Kalam News

中 입김 세졌다… 사우디·이란 화해에 중동 정세 재편 조짐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중국의 중재로 외교 관계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중동의 지정학적 정세가 재편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관계가 멀어진 세 나라가 주요 행위자로 나선 것 자체가 중동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하락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사우디와 이란의 화해를 중재하면서 중동의 지정학적 재편이 가속하고 있다”며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아시아에 몰두하는 동안 다른 강대국들이 중동에서 영향력 확보를 위해 경쟁하고 있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AFP통신은 지난 10일 사우디와 이란이 2016년 단절된 외교 관계를 7년 만에 복원하기로 하고 두 달 이내 대사관과 공관을 열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는 2016년 자국 시아파 지도자 사형을 집행했다. 이란 강경 보수 세력은 이를 문제 삼아 자국 주재 사우디 공관 2곳을 공격했다. 양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국교를 단절했다.

양국은 2021년부터 이라크와 오만의 중재로 여러 차례 관계 개선을 위한 협상을 진행해 왔다. 전문가들이 주목한 건 중국의 역할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의 중재자 역할은 글로벌 정치가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시진핑 주석의 새로운 야심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과 무사드 빈 무함마드 알아이반 사우디 국가안보보좌관은 중국 베이징에서 나흘간 회담을 하고 국교 정상화에 최종 합의했다. 양국은 “이라크와 오만, 그리고 대화를 마련하고 지원해준 중국 지도자들과 정부에 감사한다”는 성명도 발표했다.

미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중국 프로그램 책임자 윤선은 “중국은 미국의 리더십이 실패해 세계가 혼란에 빠졌다고 말한다”며 “이것은 국제질서의 미래에 대한 내러티브 싸움”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은 사우디 원유의 최대 수입국이면서 미국 제재를 받는 이란의 최대 무역 파트너다. 반면 미국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 이후 사우디와의 관계가 악화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석유 가격 안정을 위해 사우디를 찾아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만나며 관계 회복에 나섰지만 사우디는 이후에도 주요 산유국의 감산 결정을 주도하며 바이든 행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애런 데이비드 밀러 선임연구원은 “미·중 관계가 냉랭해질 때 빈살만 왕세자와 중국의 관계는 훈훈해지고 있다”며 “바이든 얼굴을 한 대 때린 격”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양국 관계 정상화 합의를 환영하면서도 중국 역할론은 평가절하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조정관은 “우리는 이 지역에서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지지한다”면서도 “(합의가 지속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이란은 자기 말을 지키는 정권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사우디는 협상 상황을 지속해 알려왔다”며 “우리가 중동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주장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수십년 동안 양국을 분열시킨 종파적 긴장이 즉시 완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WSJ는 “아직 유동적이지만 사우디 국부펀드가 350억 달러 규모의 미국 보잉 항공기를 주문할 계획”이라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어 “이번 거래는 바이든 행정부와 사우디 정부 간 긴장 완화와 협력 증가의 조짐”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