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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통 트인 미 반도체법 가드레일…“수출통제 유예 필수”


미국 상무부가 반도체 지원법 가드레일을 발표하면서 기존 기술의 업그레이드를 허용, 한국 업체들은 일단 최악의 상황을 피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도체 생산능력을 웨이퍼 ‘양’으로 정해 기존 공장의 기술 직접도를 높이는 방식의 생산량 확대 여지가 생겼다. 미 재무부는 우려국 신규·증설 투자 시 관련 정보를 당국에 보고토록 하는 지침 마련을 검토하기로 했다.

마이클 슈미트 상무부 반도체법 프로그램사무국장은 21일(현지시간) 언론 간담회에서 “가드레일 규정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한국 등 동맹과 조율했다”며 “악의적인 주체들이 미국과 동맹, 파트너를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 고위당국자는 “가드레일은 한·미 양국의 공통된 경제·국가안보 이익에 부응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반도체법은 기업이 10년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실질적 확장’(material expansion)하는 중대 거래를 하면 보조금 전액을 반환토록 했다. 이날 발표된 가드레일은 중대 거래 규모를 10만 달러로 정의했다. 이 금액을 넘어설 경우 생산능력을 첨단 반도체의 경우 5% 이상, 이전 세대의 범용(legacy) 반도체는 10% 이상 늘리지 못하게 했다.

고위당국자는 이와 관련해 “일부 기업의 경우 사업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술 수준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며 “5% 생산 (증가) 제한을 넘지 않고, 미국 수출통제를 준수하는 한 기술적 업그레이드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생산능력을 5% 이상 확대하지 않는 한 반도체법이 새로 부과하는 제한은 없다”고 말했다.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제조 시설을 확장할 수 있고, 중국 업체와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 필요한 기술적 업그레이드도 조건만 지키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상무부는 생산능력에 대한 기준을 반도체 제조 시설의 경우 월별 웨이퍼 수, 반도체 패키지 시설의 경우 월별 패키지 수로 정의했다. 기술 수준을 높여 웨이퍼당 반도체 생산 능력을 키우는 방식의 대응이 가능한 셈이다.

상무부는 투자 제한을 받는 첨단 반도체의 기준을 제시하면서 로직 반도체 기준을 28나노(1㎚=10억분의 1m), 낸드플래시는 128단 미만, D램은 18나노 이상으로 정의했다. 지난해 10월 수출통제 조치와 비교하면 로직 반도체 기준만 14~16나노에서 28나노로 확대됐고, 한국 기업과 관련한 낸드플래시와 D램 기준은 동일하다.

고위당국자는 “우리는 한국과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들”이라고 말했다.

고위당국자는 ‘중국의 기술 발전에 따라 범용 반도체 기준을 재정의할 여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법에 따라 2년마다 정의를 다시 검토하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동맹 기업들의 경쟁력이 뒤떨어지지 않도록 중국의 발전 수준에 따라 수출통제 기준을 변경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 한국 기업은 미국 정부로부터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조치 적용 1년 유예를 받은 상태다. 한국 기업의 중국 공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수출통제 조치 유예를 연장하는 것이 필수다. 이에 대해 고위당국자는 “반도체법의 의도는 중국 등 우려국에서 반도체 생산시설 확장이나 새 시설 건설을 막는 것이지 이미 수출통제를 준수하며 운영 중인 시설을 중단하려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상무부는 이날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 상무부나 재무부 등의 블랙리스트에 있는 화웨이, YMTC, 센스타임 등 중국 우려 기업과 공동 연구를 하거나 기술 라이선싱(특허사용계약)을 하는 것도 금지했다. 신규 시설 건설은 우려국 국내 시장에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에만 허용했다.

상무부는 또 “반도체 기술이 계속 발전함에 따라 미국은 동맹 및 파트너와 협력해 공동의 경제와 국가 안보를 약화하는 우려 대상 최신 기술을 막기 위한 공동 전략을 개발할 것”이라며 대중 견제 강화 방침도 밝혔다. 특히 화합물 반도체, 양자 정보 시스템용 반도체, 극저온 환경용 반도체 등 8개 품목을 국가 안보 중요 품목으로 지정, 향후 이에 대한 제한을 강화할 방침을 시사했다. 미국 정부는 다음 달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를 강화하는 추가 조치를 발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미 재무부도 이날 가드레일 발표에 맞춰 반도체법 보조금 세액 공제 세부 지침을 공개했다. 우려국에서 반도체 제조 능력을 실질적으로 확장하는 중대 거래에 참여하면 이를 회수하는 요건 등이 담겼다.

재무부는 특히 기업들이 우려국에 신규·증설 투자를 할 때 해당 투자 관련 상세 정보를 당국에 보고토록 하는 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재무부는 중요한 해외 반도체 제조 능력 확장 관련 거래에 대해서는 국세청에 통지해야 하는 정보 보고 요건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무부는 지난해 8월 9일 반도체법제정 이후 공사가 개시되고 올해 이후 서비스가 개시된 자산에 공제를 허용키로 했다. 기업이 세액공제 대신 현금 직접 수령을 원할 경우 재무장관이 이를 허가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은 “반도체법이 지원하는 혁신과 기술을 통해 미국과 동맹의 기술 및 국가안보 우위를 확대하려고 한다”며 “가드레일은 우리가 앞으로 수십 년간 적대국들에 앞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