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돈 회장이 오는 7월 새로 입주하는 액티브 USA 신축 본사 건물에서 향후 액티브 USA의 청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건물의 규모가 대지 4에이커, 건평 14만 스퀘어피트다. [박상혁 기자]4.29폭동 당시 불탔던 액티브 USA의 첫 건물 모습, 이 돈 회장은 빨간 벽돌의 건물만 보면 옛날이 생각나 가슴이 먹먹해온다고 회상했다.이 돈 회장도 충격에 벗어나지 못하고 술로 세월을 보냈다. 술에 취하지 않고 맨 정신으로는 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자의 힘은 어려울 때 빛나는 법. 이 회장을 다시 일으켜 세운 사람은 부인 이복경 여사였다.이 여사는 “피해를 입은 사람이 수없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까지 잃었다. 우리는 아직 젊다.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힘든 시간을 같이 해준 직원들은 어떡하느냐”고 말했다. 이 회장은 “나 역시 경상도 사나이라 그동안 아내의 말을 귀담아 들은 적이 없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아내의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고 회상했다.다시 일어나다거의 한 달여만에 폐허가 된 공장으로 나가보니 40여명의 직원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동안 원단을 공급해준 원단업체에서 계속 원단을 공급해 주겠다고 했고 일부 고객들은 다시 재기하라며 물건을 더 많이 구입해 줄 것을 약속했다.SBA 융자를 신청해 50만 달러를 받았다.폭동 2개월전에 사업확장을 위해 리스 계약을 해두었던 인근 매장을 재기의 발판으로 삼았다.고객들이 돌아왔고 빠르게 정상화의 길로 들어섰다. 이 회장은 “어려웠던 시절 도와준 고객들과 거래 업체에 이 기회에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그는 4.29 폭동의 아픔과 좌절을 겪고 도전과 성공의 교훈을 던져준 몇 안되는 사람중 한 사람이다.그는 ‘자바가 살아야 한인타운 경제가 산다’ ‘한인은행이 살아야 한인 경제가 산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그만큼 자바와 한인 은행은 그의 삶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엑티브의 극복과정은 패션디스트릭 자바의 성장과 궤를 함께 했다. 오늘날 20년이 넘는 자바의 성장기는 “오랫동안 자바 건물주들의 횡포에 대항하기 위해 한인의류 도매상들이 힘을 합해 1995년 완공한 샌피드로 홀세일 마트를 꼽았다. 그는 한인 자바상들이 이 홀세일 마트가 있었기에 자바 건물주들의 키머니와 리스 횡포를 벗어날 수 있었고 전국의 고객들과 소통하는 원 스톱 샤핑센터로 활용할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샌피드로 홀세일 마트는 46만5천 스퀘어피트의 면적에 283유닛이 입주한 북미주 최대의 의류 도매상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그는 오랫동안 샌피드로 마트 협회장을 역임했는데 포에버 21, 파파야, 러브 컬쳐, Q 패션, 아가씨 등 전국 업체로 발돋움한 한인업체들도 이 샌피드로 마트를 기반으로 성장했다고 진단했다.또 다른 30년을 향한 도전액티브는 2000년대 초 중국이 의류 및 제조업의 생산기지로 부각하고 판매량이 늘어나 로컬 생산을 접고 수입상으로 변신했다. 의류업의 호황과 함께 지난 2015년 현 액티브 USA 쇼룸이 있는 744 E. Pico 건물을 매입, 완전 현대식 건물로 리모델링 했다. 18개월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1층 4만, 2층 2만 등 총 6만스퀘어피트 규모의 현대식 건물로 재탄생시켰다. 이 건물은 LA 비즈니스 저널이 수여한 ‘2017년 최고 상업용 부동산’ 건물로 선정돼 리모델링 부분 금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는 건축을 전공한 건축가답게 거의 모든 건물과 쇼룸, 공장을 직접 설계와 시공에 참여하고 있다.이 회장은 현재 다운타운 인근 1701 E. 41 st에 입주하게 될 뉴 액티브 USA 신축공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대지 4에이커, 건평 14만 스퀘어피트의 대형건물이다. 창고와 함께 디자인실이 들어선다. 아마존의 배송창고 규모의 엄청난 규모다. 이 회장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습니다. 폭동 30주년을 맞는 올해에 신축 본사에 입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개 무량할 뿐”이라고 소회를 밝혔다.자바와 은행 사랑이 돈 회장은 영남대 건축공학과를 졸업, 1981년 삼환기업에 입사해 중동 건설현장에 파견돼 2년을 일했다. 그는 당시 삼환기업의 손정무 현장소장으로부터 완벽을 추구하는 업무처리능력을 배웠다고 한다.그가 의류업을 시작한 것은 당시 봉제업을 크게 하고 있었던 둘째 동서 이기명 전 LA한인회장이 공항에 픽업을 나온 때문이다.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의 직업에 따라 새 이민자의 직업이 결정된다는 말을 증명했다. 이기명 전 회장의 봉제 사업을 거들면서 의류업에 발을 들여놓았고 활동적이라는 의미의 액티브 유 에스 에이 (Active USA)를 창업한 것이 오늘날 액티브의 모태가 됐다.자바 사랑에 이어 그의 은행 사랑은 은행에 대한 투자로 잘 나타난다.새한은행의 최대주주로 이사진에 참여했고, 현재는 태평양 은행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그는 팬데믹 기간동안 한인은행들이 앞장서 PPP 론을 한인비즈니스에 제공한 것은 한인은행과 한인경제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강조했다. 더구나 한인은행의 규모가 커져 미 주류은행에 가지 않아도 될 만큼 대출능력이 있고 높은 실적으로 배당도 좋아 한인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장학사업 보람2남2녀 중 장남인 이 돈 회장은 조선시대 동방오현의 다섯분 중 한분인 이언적(1491-1553) 선생의 16대 손으로 그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 회장은 선친인 월산 이동호 선생의 호를 딴 월산장학회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이 장학회 이름으로 2012년 모교인 영남대에 100만달러를 기부한 것을 비롯 지금까지 모두 400만달러의 장학금을 기부,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다.이 회장은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을 담아 후배들의 장래를 위한 장학사업를 시작하게 됐다”며 “이 장학금으로 공부한 학생들이 사회에 훌륭한 인재가 되어 감사의 편지를 받을 때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그는 “현재 건립하고 있는 액티브 본사 건물의 승인을 받는데 시 공청회 등을 거치는데 10년의 시간이 걸렸고 LA시청 대회의실에서 경찰, 소방관, 주민 등 수백명이 모인 자리에서 환경평가(EIR) 공청회를 할 때 당시 데이빗 류 시의원의 지지선언 등이 큰 힘이 됐다”며 미 주류사회 진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인 1.5세, 2세들을 위해 지원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 1세들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 약력- 영남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영남대학교 명예 경영학 박사- 현 PCB 은행 이사- 현 세계 한상대회 리딩 CEO- 현 회재 이언적 선생 기념사업회 이사- 해외 아너소사이어티 3호- 경상북도 해외자문위원- 남가주 대구 경북 장학위원회 위원장- 전 샌피드로 패션 마트 협회장- 전 영남대학교 미주총연합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