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국민 영웅이자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았던 세계 최고 축구 스타 디에고 마라도나의 죽음을 둘러싼 재판이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사유로 전면 중단됐다.
아르헨티나 현지 법원은 오늘(5월29일), 마라도나 사망 관련 의료진 과실 여부를 심리하던 재판에서 전면 무효, 즉 Mistrial을 선언하며, 지금까지 진행된 것을 없던 일로 만들었다.
이에 따라 마라도나 재판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됐다.
이 결정은 재판을 맡았던 3명의 판사들 중 한 명인 줄리에타 마킨타치 판사가 다큐멘터리 촬영에 참여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되면서 자진 사퇴한 데 따른 것이다.
해당 다큐멘터리 ‘디바인 저스티스(Divine Justice)’는 마라도나의 사망부터 재판이 시작될 때까지를 다룬 내용으로, 줄리에타 마킨타치 판사의 법원 내부 장면과 인터뷰까지 포함된 정식 예고편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검찰 측은 이 영상이 공개된 이후,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다며 마킨타치 판사가 다큐멘터리 촬영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조사해 달라며 공식적으로 재판부에 요청했고, 이 때문에 논란이 크게 확산되자 결국 마킨타치 판사는 “더 이상 재판에 남을 수 없다”며 사퇴를 하고 말았다.
이에 따라 3월 11일부터 약 두 달 반 동안 이어졌던 마라도나 사망 관련한 재판 절차 전체가 무효화됐고, 새로운 판사 3명이 제비뽑기를 통해 선출된 뒤 다시 처음부터 재판이 열리게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 “5년의 기다림이 무너졌다” 눈물
이번 결정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쪽은 유족들이다.
마라도나의 전 연인이자 가족 대리인 역할을 맡은 베로니카 오헤다(Veronica Ojeda)는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서 “지난 5년간 쌓아온 모든 노력이 쓰레기통에 버려졌다”며 눈물을 보였다.
유족 측 변호인인 페르난도 불란도 변호사는 처음부터 다시 재판을 해야하는 답답한 상황이 됐지만 늦어도 올해(2025년) 말까지는 판결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유족들의 기대가 여전히 남아있다며 조속한 재판 일정을 촉구했다.
‘의료진 과실’ 여부 쟁점
이번 재판은 지난 2020년 11월 25일, 뇌수술 후 회복 중 심장마비로 마라도나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마라도나의 주치의와 간호사, 심리치료사 등 7명이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면서 시작됐다.
검찰 측은 이들 의료진이 수술 과정에서 마라도나에게 필요한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피고 측은 당시 마라도나가 매우 다루기 어려운 환자였으며 스스로 치료를 거부한 경우가 많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주치의 레오폴도 루케(Leopoldo Luque) 박사 등 의료진은 이번 사건의 피고인들이지만 자신들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으며, 일부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 모든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 영웅 마라도나…“국가적 충격”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신들린 활약으로 조국 아르헨티나에 우승을 안긴 디에고 마라도나는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 사이에서는 ‘신’에 가까운 존재로 여겨져 왔다.
이번 재판은 마라도나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중요한 과정으로 인식되고 있어, 전 세계 축구 팬들뿐 아니라 아르헨티나 전체가 촉각을 곤두세워왔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개입 논란과 판사 사퇴로 인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재판이 원점에서 진행되게 되면서, 국민적인 실망감과 불신도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