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4일 침공을 개시한 러시아군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최소 12명의 고위장성을 잃었다. 우크라이나군 스나이퍼에 의해 암살되거나 갑작스레 몰아친 포격에 사망한 것이다.
수많은 전차와 장갑차량, 항공기, 심지어 흑해함대의 기함인 모스크바호까지 우크라이나군 공격에 격침되면서 러시아군의 사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꼬꾸라지는 형국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우크라이나군이 공격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4일(현지시간) 미국 정부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거의 바늘을 꽂듯 정확한 우크라이나군의 포격과 무인기 폭격 등은 미국 군 당국과 정보기관이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러시아군의 이동정보에 의해 이뤄진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진행되는 러시아군 고위장성, 대규모 기갑부대 등의 이동정보를 우크라이나군에 제공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정밀 정보는 미국의 군사 정찰위성과 각종 민간위성, 군과 중앙정보국(CIA) 등 정보기관, 초정밀 정찰기 등이 수집한 정보들을 모두 취합해 미군에 의해 종합·분석돼 우크라이나측에 제공된다는 것이다.
미국은 최근에는 러시아군이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얼마만큼의 병력 규모와 기갑전력으로 어디서부터 대규모 공격을 시작할지를 판단해 정보를 우크라이나 군 지휘부에 직접 전달했다. 러시아군의 돈바스 총공세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우크라이나군은 적의 이동경로를 예측해 방어선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미국의 역할은 이처럼 ‘정보 제공자’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 전쟁 초기부터 제공한 각종 미국산 무기는 우크라이나군 전력의 핵심이 됐다.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기 위해 진격하던 수백대의 러시아 탱크들이 미국산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의 제물이 됐다. 미국이 독려해 제공 받은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제 대전차무기들이 러시아군의 1차 대공세를 저지한 ‘최종무기’ 노릇했다.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 지원을 꺼리던 독일이 ‘분쟁국가에 무기지원 금지’ 원칙을 파기하고 자주포와 장갑차 등을 직접 제공키로 한 것도 바이든 행정부의 압박 덕분이다.
최근에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 의해 제출된 ‘무기 대여법’(Lend-Lease)이 상·하원을 통과하면서 방어용 무기뿐 아니라 자주포와 장거리 로켓포 등 공격용 무기들도 속속 전장에 등장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의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금지를 둘러싼 불협화음을 정리한 것도 역시 미국이었다. 에너지 결제대금을 금융기관 제제를 통해 틀어 막고, 현실화된 안보위기 앞에 유럽을 똘똘 뭉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이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과 돈바스 내전을 겪은 이후 군 편제를 서방국가 형태로 바꾸고 각종 특수부대 훈련과 서방제 무기 사용법 등을 교육 받은 것도 미국에 의해서였다.
전 세계 군사전문가들은 “군대를 파견하거나 직접 참전하지만 않았을 뿐 이번 전쟁의 판도는 미국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NYT는 “미국 정보기관들은 러시아군 최고위 장성의 이동경로는 제공하지 않는다”며 “이들마저 사살될 경우 크렘린의 분노가 전쟁 양상을 바꿀 만큼 고조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정도로 미국은 이미 전쟁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고 평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