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가 가혹하고 무용(無用)하다는 주장을 폈다. 이들 국가는 지난달 26일 새 안보리 제재에 대한 표결에서 거부권을 행사했었다. 이날 발언은 역내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제재를 반대한 이유에 대해 해명하려는 성격이었다.
장쥔 주유엔 중국대사는 8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회의에서 “북한은 2018년 비핵화 조처를 했지만, 미국은 북한의 적극적인 조치에 상응하는 조치를 하지 않았고, 북한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우려에도 대응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문제 해결에 필요한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았다”며 “한반도의 현재 상황은 긴박해지고 있는데, 이는 주로 미국의 정책 뒤집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사는 “미국은 특정 영역에서의 대북 제재 완화와 연합 군사훈련 중단과 같은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며 “단지 전제조건 없이 대화할 준비가 됐다고 말만 하지 말고 행동에 나서는 것이 핵심”이라고 미국에 책임을 돌렸다. 또 유엔 안보리 제재가 가혹하고 전례가 없는 것이라며 “최근 북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하면 새로운 조치는 비인간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안나 에브스티그니바 주유엔 러시아 차석대사도 “새 제재 결의안은 북한의 복잡한 인도주의적 상황을 더 악화할 수 있기 때문에 지지하지 않은 것”이라며 “우리는 안보리 의장성명을 원했지만 이러한 제안은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제재 패러다임은 지역 안보 보장에 실패했다”며 “북한 문제를 진지하게 다뤄본 사람이라면 북한이 제재 위협으로 무조건적인 무장해제를 할 것이라 기대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에브스티그니바 차석대사는 북한의 코로나19 영향을 언급하며 “(추가 제재) 조치의 인도주의적 여파는 극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또 “중국과 러시아가 제안한 인도주의적 제재 면제 확대 조치가 더욱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제프리 드로렌티스 주유엔 미국 부대사는 “북한은 올해 초부터 31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다수의 안보리 결의안 위반”이라며 “중국과 러시아는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북한에 (도발에 대한) 암묵적 동의 의사를 내비쳤다”고 비판했다. 그는 “결의안 부결 이후 북한은 8발의 탄도미사일을 추가 발사할 정도로 대담해졌다. 이 모든 일은 북한이 잠재적인 7차 핵실험 준비를 마무리하는 상황에서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드로렌티스 부대사는 “제재는 영구적으로 설계되지 않았다. 미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제재 완화를 논의하는 데 준비 그 이상이 돼 있다”며 “북한이 의미 있는 비핵화 행동을 할 때까지는 제재에 협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다와라 기요시 일본 외무성 부대신도 “북한은 안보리의 강력한 대응이 없는 상황을 이용이라도 하듯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가속하고 있다”며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가 깊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북한도 정면으로 충돌했다. 조현 주유엔 한국대사는 “안보리는 매우 유감스럽게도 2006년 이후 처음으로 북한의 심각한 도발에 대응하는 데 실패했다”며 “우리는 북한에 도발을 멈추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통한 한반도 평화와 대화 요청에 응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김성 주유엔 북한 대사는 “미국이 추진한 결의안 채택 시도는 유엔 헌장과 국제법 정신에 어긋난 불법 행위로 단호히 반대하고 비판한다”며 “왜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극초음속미사일 등 시험발사는 한 번도 안보리에서 의문을 제기하거나 규탄하지 않았는지 정말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2차 대전 이후 10개 이상의 나라를 침략하고 50개 이상의 합법 정부를 전복하는 데 관여하고, 무고한 시민 수십만 명을 죽인 유일한 유엔 회원국은 다름 아닌 미국”이라며 “(북한의 무기 시험은) 영토와 영공, 영해, 공해상에서 이웃 국가들에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수행했다”고 말했다.
한편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은 분명 (북한의 활동을) 모니터링하면서 북한이 행한 시험들에 대해 계속 반응하고 있다”며 “계속된 핵실험 가능성을 매우 자세히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변함없이 강력하고 분명한 입장을 취해 왔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