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 삼아 유럽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을 통해 유럽에 공급되는 천연가스 공급량을 또다시 줄이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유럽은 러시아의 압박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새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가스프롬은 25일(현지시간) 발트해 해저를 통해 독일로 연결되는 노르트스트림1 가동 축소를 발표했다. 가스프롬은 “모스크바 시간 기준 27일 오전 7시부터 포르토바야 가압기지의 하루 가스운송량이 현재(하루 6700만㎥)의 2분의 1인 하루 3300만㎥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예고했다. 가스 공급을 열흘 간 끊었다가 40%만 재개한 지 나흘 만에 다시 20%로 옥죄는 것이다.
러시아는 가스 공급량 축소의 표면적 이유로 ‘엔진의 기술적 상태’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실상은 ‘에너지 무기화’ 전략으로 서방의 경제제재에 대응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11일 러시아는 시설보수를 이유로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을 완전 중단했다가 지난 21일 가스관 일부를 개통했다. 이날 다시 가스 공급량을 축소하며 유럽에 에너지 불안을 지속해서 부각하는 동시에 유럽의 대러시아 제재 시스템에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유럽은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에 뚜렷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EU가 수입하는 전체 가스의 40%가 러시아산이었다. 올해 상반기 노르트스트림1을 포함해 주요 가스관 3개를 통한 유럽행 러시아산 가스의 수송량은 전년 동기 대비 절반 정도로 줄었고, 러시아는 공급량을 더욱 줄이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선 유럽 각국이 다른 국가에서 가스를 수입하거나 가스 사용량 자체를 줄여야 하는데 단기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결국 러시아의 가스 차단이 유럽에 전방위적인 타격을 줄 것이란 시각이 많다. EU는 난방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에 대비해 가스 등 에너지 수급을 대비해야 하는데, 러시아의 가스 차단으로 각국이 에너지 수입 문제를 두고 서로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이미 에너지 수급 문제로 유럽에 분열의 신호가 포착되고 있다. EU 에너지 장관들은 러시아산 가스 감축에 대비해 내년 봄까지 가스 사용을 15% 줄이자고 회원국에 제안했지만 당장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