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3일 대만에서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 총통을 만나 “민주적으로 통치되는 대만에 대한 약속을 절대 저버리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대만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펠로시 의장의 일정은 인권박물관 방문, 천안문 시위에 참여한 반체제 인사 면담 등 중국 압박에 초점이 맞춰졌다.
중국은 중국의 통일 대업을 방해하려는 시도는 헛된 일이며 반드시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펠로시 의장은 타이베이에 있는 총통부를 찾아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대만에 대한 미국의 연대가 중요하다”며 “우리의 지속적인 우정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면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다른 미국 의원들의 대만 방문을 막을 수 없다”며 “우리는 현상 유지를 지지하며 대만에서 무력에 의한 어떤 일도 일어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펠로시 의장은 차이 총통을 미 의회에 초청하는 기회가 있기를 희망한다는 뜻도 내비쳤다.
차이 총통은 펠로시 의장이 바위처럼 굳건한 지지를 보여준 데 감사를 표하면서 “의도적으로 고조된 군사 위협에 물러서지 않고 민주주의를 위한 방어선을 지키며 자위력 강화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 등급 훈장을 펠로시 의장에게 수여했다.
펠로시 의장은 대만 입법원(의회)을 방문해서도 “대만은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회 중 한 곳”이라며 “대만과 의회간 교류를 늘리길 원한다”고 말했다.
군사 대응을 예고했던 중국군은 4일 정오부터 7일 정오까지 대만 주변 해역에서 실탄 사격을 포함한 중요 군사훈련을 실시한다. 관영 신화통신이 공개한 지도를 보면 군사훈련은 대만 북쪽 3곳과 남서쪽 2곳, 동쪽 1곳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대만을 관할하는 인민해방군 동부전구는 대만해협에서 장거리 실탄 사격 훈련을 시작했다. 장거리 실사격에는 대만 내 표적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방사포가 탑재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전문가들은 군사훈련 외에도 대만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여러 선택지가 있다고 위협했다. 중국군이 대만의 군사 목표를 타격하거나 통일을 위한 법제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대만 당국이 통제하는 공역과 수역에 중국 군용기와 함정을 보내 암묵적인 휴전을 끝내는 옵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번 군사훈련은 1996년 대만해협 위기 때보다 규모가 더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만 국방부는 중국의 군사훈련이 해상 및 공중 봉쇄나 다름없고 대만 영해를 침범했다고 반발했다. 대만 국방부는 “중국의 비이성적인 실탄 사격 훈련은 국제 수로를 위협하고 지역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며 “갈등을 고조시키지 않는 합리적 방법으로 경계 태세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중국군이 대만을 포위하는 형태의 군사훈련을 펠로시 의장이 떠난 다음 실시한다는 점에서 미국과의 정면 충돌을 피했다는 분석도 있다. 펠로시 의장 등 미 하원의원 대표단이 탄 미 공군 C-40C 수송기도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대신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영공을 경유해 대만에 도착했다.
중국은 강력한 언사를 동원한 외교적 항의도 이어갔다. 셰펑 외교부 부부장(차관급)은 펠로시 의장이 대만에 도착한 2일 밤 늦게 니컬러스 번스 주중 미국대사를 불러들여 “천하의 못된 짓을 저지르고 고의적으로 불장난을 도발했다”며 “중국은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고 말한 대로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도 별도 담화를 내 “미국은 중국의 통일 대업을 방해하려는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된다”며 “이러한 시도는 헛된 일이며 반드시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