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가 남성 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형법을 폐지하기로 했다고 21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로써 영국 식민지 시절인 1938년 도입돼 남성 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근거로 작용해온 형법 377A조는 84년 만에 폐지될 전망이다.
CNN과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이날 국경절 기념 연설에서 “형법의 377A 조항을 폐지하고 남성 간 성관계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라고 발표했다.
그는 폐지 이유에 대해 “다른 모든 인간 사회처럼, 우리도 게이 인구가 있고 이들도 우리 싱가포르 국민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우리의 동료, 친구, 가족이며 이들도 자신의 삶을 살고 싶고 우리의 공동체와 싱가포르에 기여하고 싶어 한다”고 덧붙였다.
리셴룽 총리는 “대다수 싱가포르 국민은 이제 이를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한다”며 “성인 간 개인적인 성행위는 어떤 법과 질서에 관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이를 이유로 사람들을 기소하는 것에도, 이를 범죄로 만드는 것에도 타당한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동성 간 결혼을 허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못 박았다. 그는 “이번 조항 폐지 조치는 제한적일 것”이라며 “결혼의 정의와 어린이에게 이를 교육하는 것에서는 자국의 전통적인 가족이나 사회적 규범을 흔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동성 결혼 허용을 위한 헌법상의 이의 제기가 있을 수 없도록 헌법을 개정할 것”이라며 “우리가 377A 조항은 폐지하지만, 기존 결혼 제도는 유지하고 보호할 것”이라고 재차 말했다. 향후 헌법 개정을 통해 가족의 전통적인 가치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싱가포르 형법 377A 조항은 남성 간 성관계를 가질 경우 최대 2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앞서 싱가포르 의회는 2007년 이 조항의 폐지 여부를 논의 한 바 있다. 이후 싱가포르 사법 당국은 이 조항을 유지하되 실제로 처벌은 하지 않는 입장을 취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