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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한국車 차별’ 정부간 협의 돌입…사태 장기화 우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발효에 따른 한국산 전기차 역차별 문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은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 미국과 정부 간 공식 협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전기차 세제지원은 미 의회의 입법 사안이어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재량에는 한계가 있다. 중간선거를 앞둔 민주당이 당장 법안 수정에 나서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조태용 주미 한국대사는 29일(현지시간) 특파원 간담회에서 “한·미는 이 문제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 간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며 “대사관은 미 의회와 행정부 인사를 다양하게 만나 한국산 전기차에 대한 차별적 조치 부당성을 강조했고, 미국 측도 (한국의 문제 제기에) 별 이견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미 의회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입법을 통해 미국산 배터리와 핵심 광물 등을 사용하고 북미권에서 조립된 전기차만 보조금 혜택을 주도록 해 한국 기업에 대한 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한국 정부는 이 같은 조치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이자 자유무역협정(FTA) 파트너인 한국에 대한 부당한 대우라는 의견을 전달했는데, 바이든 행정부도 이런 문제 제기가 타당하다고 여기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미국을 찾은 정진석 국회부의장 등 여야 의회 대표단도 “(미 정부 당국자들이) 한국의 우려와 분노를 잘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는 국내 기업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미국산’ 범위에 대한 개념을 확장하거나 한국에 대한 기준 적용 유예 등을 담은 법 개정을 목표로 협상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장 조기에 해법이 마련되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조 대사는 “우리 국익을 확보하기 위해 어려운 상황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고 솔직하게 협의하고자 한다”면서도 “이 문제는 미국 의회를 통과해 법률로 확정된 사안이어서 완전한 해법을 마련하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는 기후변화 대응, 의료보장 확대 등 지지층을 겨냥한 바이든 행정부 역점사업이 망라돼 있어 민주당이 중간선거 전 수정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한국 정부는 일단 중간선거 전 백악관과 행정부, 의회 관계자 접촉면을 늘려 우리 측 입장을 최대한 전달하고 해법 마련을 위한 우호적 여론을 형성하겠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안성일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 등 산업부와 손웅기 기획재정부 통상현안대책반장, 이미연 외교부 양자경제외교국장 등으로 구성된 합동대표단도 이날 미국 워싱턴DC에 도착해 미국 측과 본격 협의에 나섰다. 다음 주엔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이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장관급 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는데, 워싱턴DC에 들려 한국 의견을 전달할 방침이다. 안 본부장은 미국 정부에 한국 정부의 우려를 담은 공식 서한도 이미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미 대사관은 의회 지도부나 상원 재무위원회, 하원 세입위원회 등 관련 핵심 인사를 집중 접촉해 요구 사항을 관철해 나갈 계획으로 전해졌다. 이도훈 외교부 2차관도 방미 계획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참석이 예상되는 유엔총회에서 한·미 정상이 직접 협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음 달 18∼20일 뉴욕을 방문하는데, 윤 대통령과 만남이 성사되면 이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 에릭 홀콤 미국 인디애나 주지사를 접견하고 우리 측 우려를 전달했다.

한편 중국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미국의 전기차 정책에 대한 한국의 불만은 ‘칩4’의 균열을 보여준다”며 “미국 중심의 공급망에 합류하는 것은 한국의 전략적 이익에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