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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이 나았다”… 푸틴 성토장된 고르비 장례식


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하우스 오브 유니온’ 필라홀에서 열린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장례식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현재의 러시아에 대한 성토장이 됐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젊은 대학생부터 80대 노인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노소 추모객들은 “30년 전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로 전체주의 소련의 굴레를 없애고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던 고르바초프 집권 당시보다 지금의 러시아가 훨씬 후퇴했다”고 성토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오전 10시부터 거행된 장례식에는 수천명의 추모객이 몰려와 고인의 시신이 놓인 관 앞에 헌화하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고인의 외동딸인 이리나와 두 손녀가 곁을 지켰다.

고인은 지난달 30일 당뇨와 심장 질환 등으로 인한 오랜 투병 끝에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장례식은 약 3시간 반 만에 종료됐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시신은 노보데비치 묘지로 운구돼 1999년 백혈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라이사 여사 옆에 안장됐다.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고인의 영정사진을 들고 묘지로 가는 운구행렬을 이끌었다. 무라토프가 93년 고르바초프의 자금 지원으로 설립한 신문사 노바야가제타는 지난 3월 푸틴 정부의 비리를 폭로하고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다 러시아 당국의 처벌 위협 속에 폐간됐다.

이날 장례식은 국장(國葬)으로 치러지지 않았다. 러시아 최고 지도자 가운데 장례식이 국장으로 치러지지 않은 건 71년 니키타 흐루쇼프 이후 처음이다.

푸틴 대통령은 장례식에 불참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은 업무 일정상 참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NYT는 “조촐하고 우울하게 거행된 고르바초프의 장례식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서방으로부터 고립된 러시아의 처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장면”이라고 평했다. AP통신도 이번 장례식은 2007년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장으로 치러지고 국가 애도일로 선포된 것과 대조된다고 지적했다.

장례식에 참석한 한 모스크바 시민은 “러시아에 민주주의를 가져다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조문하러 왔다”고 말했다. 역사학자 안드레이 주보프는 “옛 소련 시절을 전혀 모르는 젊은 세대까지 장례식장을 대거 찾은 것은 현 정치시스템에 대한 무언의 항의”라고 언급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