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가 최근 전세를 뒤집은 데는 미국이 제공한 ‘고속 대(對) 레이더 미사일(HARM: High-speed Anti-Radiation Missiles)’가 게임 체인저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대 레이더망을 무력화하는 HARM 공격에 방공망을 잃은 러시아군이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12일(현지시간) 미국이 지원한 HARM이 최근 우크라이나가 북부 하르키우 수복 작전에서 대반격에 성공하게 만든 게임 체인저라고 보도했다. HARM은 전투기에서 지상으로 발사하는 공대지 미사일로, 최장 145㎞ 떨어진 곳에서 지상의 레이더파 발신지를 추적해 정밀 타격한다.
러시아는 미사일 공격을 막기 위해 대공 방어 레이더를 상시 가동해야 하나 HARM이 큰 골칫거리다. 레이더를 가동하는 순간 우크라이나 전투기가 HARM으로 레이더를 타격하기 때문이다. 이에 러시아군은 반드시 가동해야 할 때가 아니면 레이더 가동을 멈추고 있다.
상대 방공망을 제압해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건 미국이 베트남전 때부터 사용한 전술이다. 미국은 1986년 리비아 공습과 2003년 이라크전에서 HARM을 활용했다. 다만 우크라이나에서 HARM이 등장한 건 ‘뜻밖의 일’이라는 평가다.
우크라이나 공군이 운영하는 미그기, 수호이 등 옛 소련 전투기와 HARM은 시스템이 달라 전투기 날개에 미사일을 부착하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임시로 제작한 어댑터로 둘을 연결했는데, 미 국방부는 최근 우크라이나가 성공적으로 HARM을 장착해 활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수개월 전부터 우크라이나군에 HARM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지난달 확인하고 최근엔 추가 제공을 승인했다.
우크라이나군이 승기를 잡자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가들이 무기 지원을 늘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서방이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인들이 사용할 줄 아는 러시아산 무기를 제공했지만 앞으로는 탱크와 같은 더 정교한 중화기를 지원하자는 인식이 힘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카를 빌트 전 스웨덴 총리는 NYT에 “서방 무기는 더 많은 훈련과 정교함이 필요하지만 이런 무기 지원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탱크 공급을 거부해온 독일에 대한 압박도 커질 전망이다. 다만 전쟁에 깊숙이 휘말리지 않길 원하는 국내 여론 탓에 독일이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우크라이나는 승기를 확실히 잡기 위해 장거리 미사일 시스템 등 더 많은 무기를 미국과 동맹국에 요청하고 있다. 사거리가 약 306㎞인 장거리 지대지미사일 ATACMS와 2000발의 미사일을 쏠 수 있는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탱크와 무인항공기를 요청한 상태다.
한명오 기자 myung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