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중 정상회담 전 관계 개선을 위한 비공식 채널을 가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달 중국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한 직후 미국과의 ‘백 채널’ 접촉을 승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시간) 중국이 외교부부장 출신인 왕차오 중국인민외교학회 회장이 이끄는 대표단을 이달 중순 미국에 파견했다고 보도했다. 대표단은 추이톈카이 전 주미중국대사, 천더밍 전 상무장관, 닝지저 전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 등 정책과 경제 분야 원로급 인사 13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지난 10~11일 뉴욕에서 같은 규모의 미국 측 대표단을 만나 대만 문제 등 각종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 인사로는 모리스 그린버그 전 AIG 회장과 조 리버먼 전 상원의원과 테리 브랜스태드 전 아이오와주지사 등이 참석했다.
이번 행사는 그린버그 전 회장이 주최했다. 그는 2018년 중국 개혁개방 40주년 유공자로 선정돼 시 주석으로부터 메달과 표창을 받은 인물이다. 그린버그 전 회장은 지난 7월 WSJ에 “미·중 관계를 재건하고 싶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내고, 건설적인 양자 대화 재수립을 위한 미국 측 모임 설립을 알렸다. 이 그룹의 창립 인사에는 크레이그 앨런 미·중기업협의회 회장, 맥스 보커스 전 주중미국대사, 윌리엄 코헨 전 국방장관 등 고위급 인사들이 포함됐다.
친강 주미중국대사는 해당 칼럼을 중국 지도부에 알려 관심을 끌어냈고, 이후 시 주석은 그린버그 전 회장이 설립한 모임과 같은 수준의 카운터파트 구성을 승인했다고 한다.
중국 대표단의 방미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미리 통보됐고, 회의 후 간담회 내용도 전달됐다. WSJ은 중국 측 고위인사들이 미국을 방문한 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회의에 참석한 마이크 멀린 전 합참의장은 “양국 관계 하향세에 대해 우려하고 있고, 이는 중국 측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의에서 미국은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를 주장했지만, 중국 대표단은 궁극적으로 대만과 통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했다고 한다. WSJ은 “중국 대표단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북한 등 지정학적 이슈에 대해 미·중이 협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을 시사했다”며 “그러나 대만과 관련한 중국의 핵심 이익 존중과 기술 분야에서의 수출규제 완화를 협력 조건으로 내세운 것으로 보였다”고 참석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대니얼 러셀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시 주석이 향후 더 큰 경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상황을 일정 부분 안정화하려는 것 같다”며 “미·중 간 관여가 부족한 상황임을 고려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직접 대화를 하는 건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