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성 치매의 원인 질환인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낮잠을 많이 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런 환자 중에는 낮에 졸음을 못 참는 기면증(narcolepsy)에 시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알츠하이머병은 일종의 신경 퇴행 질환이다. 나이가 들면서 뇌 신경세포(뉴런)가 퇴화해 생기는 병이라는 뜻이다.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밤잠을 잘 못 잔다고 생각했다. 낮에 계속 졸린 게 밤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그런데 과학계의 이런 통념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알츠하이머병 환자는 근본적으로 우리 몸을 깨어 있게 하는 뇌의 ‘각성 뉴런’이 고장나 있었다.대뇌 하부 피질에 존재하는 이 뉴런 그룹이 퇴화하는 덴 타우(tau) 단백질이 깊숙이 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타우는 베타 아밀로이드(beta amyloid)와 함께 신경 퇴행의 주요 원인 단백질로 알려져 있다.미국 샌프란시스콘 캘리포니아대(UCSF)의 ‘기억 노화 연구센터’ 과학자들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지난 4일 미국 의사협회 저널 ‘JAMA 신경학’에 논문으로 실렸다.이번 연구를 이끈 UCSF의 리 그린버그 조교수 연구팀은 2019년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기면증 원인을 설명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았다.당시 연구팀은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기면증이 낮에도 각성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신경 퇴행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게 요지였다.이번 연구 논문의 수석저자를 맡은 그린버그 교수는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낮에 피곤함을 느끼는 건 밤에 잠을 못 자서가 아니라 뇌의 각성 뉴런이 제 기능을 못 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그린버그 교수팀은 이번에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서 각성 뉴런이 파괴되는 경로를 실제로 확인했다.연구팀은 알츠하이머병 환자 33명과 진행성 핵상 마비(PSP) 환자 22명의 뇌 조직에서 베타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 수치를 각각 측정한 뒤 뇌전도계로 모니터한 수면 행태와 비교했다.대조군은 평생 뇌 질환을 앓지 않은 32명의 건강한 지원자로 구성했다.PSP 환자는 알츠하이머병과 반대로 피로를 느끼는 ‘수면 뉴런’이 손상됐다. 이런 PSP 환자는 ‘수면 박탈’에 이를 정도로 잠을 거의 못 잔다.대부분의 연구자는 베타 아밀로이드의 뇌 조직 침적에 더 무게를 뒀다.뇌 조직에 쌓인 베타 아밀로이드는 밤잠을 자는 동안 제거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특히 잠을 전혀 못 자는 PSP 환자의 경우 다량의 베타 아밀로이드가 쌓여 있을 거로 예상됐다.그런데 실험 결과는 전혀 달랐다. PSP 환자의 뇌엔 축적된 베타 아밀로이드가 없었다.타우 단백질이 ‘수면 뉴런’과 ‘각성 뉴런’의 퇴행에 관여한다는 건 이렇게 밝혀졌다.두 유형의 뉴런은 각각 각성과 수면을 촉진하는 스위치 기능을 했다.그러면서 생체리듬을 제어하는 뉴런 군(群)과 연결돼 하나의 시스템처럼 작동했다.연구팀은 환자들이 사후 기증된 뇌 조직에 실험해, 이들 두 유형의 뉴런 군이 공조해 수면ㆍ각성 사이클을 제어한다는 걸 확인했다.연구팀은 이런 아이디어를 반영해 PSP에 대한 임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과민해진 뇌의 각성 시스템에 작용하는 실험 약물의 효과를 테스트하는 것이다.결국 알츠하이머병과 PSP는 신경 퇴행으로 오는 수면 장애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있다는 게 연구팀의 결론이다.수면 장애의 증상은 서로 다르지만, 치료법은 비슷한 경로에서 찾을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