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러시아, 중국, 북한을 한 데 묶어 인권과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곳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들 국가는 정부가 반대세력이나 인권운동가, 언론인 등을 부당하게 투옥·고문하고 살해하는 등 인권 쇠퇴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미 국무부는 12일(현지시간) ‘2021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발표하며 “전 세계의 권위주의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 군대와 친러 세력이 고문에 참여한 보고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대표적 인권침해 사례로 알렉세이 나발니 독살 사건 등을 꼽았다. 미국은 러시아가 반정부 시위 참여자를 반복적으로 체포해 구금하는 사례도 많다고 지적했다. 시위자를 체포해 가둔 뒤 석방되면 곧바로 다른 혐의로 구금해 장기간 수감하는 이른바 ‘회전문 감금’이 증가했다고 언급했다. 경미한 위반 사건에도 장기간 수감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번 보고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인 2021년 상황을 담고 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벌인 잔혹한 전쟁만큼 인권 쇠퇴의 결과가 극명한 것은 없다”며 “우리는 손이 묶인 채 거리에 버려진 시체들, 강간당한 여성과 소녀, 굶어 죽어가는 민간인의 간청을 본다”고 비난했다. 또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가 이끄는 군대가 불법적이고 광범위한 민간인 납치와 고문, 학대, 폭력 등이 자행됐다”며 “러시아가 마리우폴 점령을 추진하면서 더 심각한 만행이 펼쳐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블링컨 장관은 “
미국 보고서는 중국의 신장 위구르 등 소수 민족과 종교 집단에 대한 대량학살과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중국 정부가 이들에 대해 자의적 구금을 하거나 강제 불임 수술과 낙태를 강요하고, 산아제한 정책을 더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구르인에 대한 강간, 고문, 강제 노역 사실도 언급했다.
미 국무부는 “정부 관리와 보안 기관이 자주 인권 유린을 저질렀다고, 처벌받지 않았다”며 “당국은 경찰에 의한 살해 사건 수사를 발표하긴 했지만, 징계 조치 등 결과는 발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미 국무부는 북한 정권이 수많은 학대를 해왔다는 믿을만한 보도들이 있지만 이를 처벌하지 않아 광범위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리사 피터슨 미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 담당 차관보 대행은 “우리는 북한이 전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권위주의 국가 중 하나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며 “북한 정부가 자행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한 인권 침해 보도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정부에 의한 불법적이거나 자의적인 살해, 정부에 의한 강제적 실종, 정부 당국에 의한 고문 및 잔혹하고 비인간적이며 모멸적인 대우 및 처벌을 적시했다.
보고서는 또 북한이 코로나19 봉쇄를 위해 특수부대와 제7군단 병력을 중국 국경 인급에 배치하고 탈북자 등에 대해 총격을 가하는 등 강제 조치가 만연했다고 지적했다.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강제 송환해 고문하고 강제노역을 시키는 사례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강제 송환된 여성에 대한 구타와 고문, 성적 학대 사실도 열거했다.
보고서는 북한이 올 초 김일성 주석 생일을 기념하는 태양절(4월 15일)을 앞두고 가난한 무역 노동자들에게 충성금 지급을 지시했다고 언급했다. 외화벌이를 위해 러시아에 파견된 노동자들에게도 비슷한 요구가 이어졌다고 한다. 보고서는 자유아시아방송(RFA)를 인용 “북한 당국이 블라디보스토크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북한 노동자들에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도 ‘충성금’ 지급을 늘리라는 명령을 했다”고 설명했다.
국무부는 한국의 인권 및 부패 관련 이슈로 대장동 사건, 언론중재법, 군대 내 따돌림 및 성폭행 사건 등을 지목했다.
보고서는 대장동 사건을 언급하며 “검사가 확보한 증거는 자산관리회사 화천대유가 시 공무원과 공모하고 정치인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제기한다”며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되고, ‘아들 퇴직금 50억 원’ 논란에 휩싸인 곽상도 전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했다”고 소개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논란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내 정경심 씨의 자녀 입시 비리 유죄도 언급했다.
보고서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둘러싸고 극심한 논란을 빚은 언론중재법 개정안도 설명했다. 보고서는 “여당은 거짓이거나 날조된 것으로 판명된 보도의 희생자가 언론이나 온라인 중개업자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을 추구하도록 하는 논쟁적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한다”며 “특히 언론은 이 법이 자유롭게 활동할 언론의 능력을 더욱 제약할 것이라면서 반대했다”고 적었다.
보고서는 정부와 공인이 명예훼손법을 사용해 공공의 토론을 제약하고 사인과 언론의 표현을 괴롭히고 검열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방한 전단을 배포한 혐의로 고발당했다가 취하된 사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검찰의 명예훼손죄 기소,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족의 명예훼손 고발 등을 예로 들었다.
보고서는 “가정 폭력은 여전히 중요하고 제대로 보고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다”며 “최근 몇 년 동안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국제결혼) 여성들이 언어 장벽과 국가 내 지원 네트워크 부족으로 인권 침해에 더 취약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