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2022년 말 기준 자국의 인구가 14억1175만명으로, 그 전해보다 85만명이 줄었다고 발표했다. 60세 이상이 2억8004만명(19.8%), 65세 이상은 2억978만명(14.9%)으로 노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34.7%였다. 중국 인구가 감소한 것은 마오쩌둥이 펼친 대약진운동으로 대기근이 강타했던 1961년 이후 처음이다.
올해 중국 인구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도도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고령화·출생률 저하 현상이 일반화하고 있다.
두 국가의 인구 증감 추세는 산업화가 될수록,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출생률이 떨어지고 노령인구가 늘어나는 ‘선진국의 법칙’을 중진국들이 이어받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중남미 등에서 계속 이민자가 유입되는 미국을 제외하면 모든 선진국은 고령사회 또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상태다. 여기에 저출산이 더해지면서 ‘인구절벽’에 다가서고 있다. 유엔 분류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가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서구 선진국 이탈리아의 저출산 고령화 상황을 분석하고 “‘실버 쓰나미’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획기사를 게재했다. 실버 쓰나미는 급격한 인구 고령화를 의미하는 용어다. 50·60·70년대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은퇴하는 시기를 전후로 출생률 급감과 노령인구 급증이 동시에 나타나며 여러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현상을 일컫는다.
신문은 “이탈리아의 실버 쓰나미는 정부나 통계 당국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속도가 빨라, 마치 경주용 차가 최고 속도를 올린 것처럼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밀라노와 볼로냐 사이에 있는 이탈리아 북부 공업지대 주요 도시인 피아첸자에선 유치원과 요양원을 통합하는 ‘새로운 통합 케어센터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아동 인구가 급속히 줄어들어 문을 닫아야 할 판인 유치원이 속출하자 이를 요양원 겸 유치원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시내 곳곳의 ‘하이브리드 케어센터’ 정원은 아동 1명당 노인 4~5명꼴이다. 이를 놓고 NYT는 “현재의 젊은 세대가 감당해야 할 노령인구 복지비가 얼마나 많은지 잘 보여주는 풍경”이라고 했다. 젊은 노동인구 노인 1인당 4·5명의 복지비를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파산 위기에 내몰린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HS)의 실태를 살펴보면 선진국의 실버 쓰나미가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잘 알 수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유명한 슬로건으로 다른 선진국의 복지국가 모델이 되기도 했던 NHS는 평범한 영국인들에게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지 한참이 됐다. 전국의 공공병원 병상은 80% 이상 노약자들에 의해 장기 점령돼 있으며, 한번 수술을 받거나 치과 임플란트 시술을 받으려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0년을 기다려야 하는 지경이다.
의료복지 관점에서 보면 노령인구 증가는 엄청난 문제를 일으킨다. 급증하는 각종 성인·만성 질환자 치료에 엄청난 재정을 들여야 하는 데다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치매 환자까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만성 적자에 국가 재정도 고갈돼 NHS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수년 안에 파산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영국 바로 옆의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꺼낸 연금개혁 카드를 놓고 전국이 반대 시위로 들끓고 있다. 마크롱 정부는 노령층이 받는 연금액을 줄이고 수령 연령은 높이며 노동인구의 연금부담률을 크게 높이겠다고 나섰지만 모든 연령층이 폭력 시위도 불사하며 반대한다. 전체 사회로 보면 급격한 노령층 증가로 인해 연금 개혁이 꼭 필요한데도 말이다.
실버 쓰나미는 서유럽의 정치 지형도 바꾸고 있다. 더 많은 세금을 걷어 서민에게 더 많은 복지혜택을 주는 정책을 고수하는 진보 좌파들의 입지는 좁아지고, 노령층의 건강보험·연금 혜택을 제한하고 세금을 깎겠다는 구호를 내세운 우파 세력이 득세하는 것이다. 북유럽의 대표적인 복지국가 모델인 스웨덴은 30년 이상 진보좌파 사회민주당이 집권했지만 최근 우파에 의해 정권이 교체됐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로 대표되던 영국 노동당도 20년 이상 집권하지 못하고 있으며 프랑스 사회당은 아예 정당이 공중분해 된 상태다.
한국과 일본도 실버 쓰나미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18%를 넘어 초고령사회 진입을 코앞에 둔 우리나라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선진국들이 한 세기를 두고 겪던 고령화의 덫을 불과 20년 만에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50년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이 0.5%대로 낮아질 것이라고 지난해 말 예측했다. 통계청은 2050년 인구 5000만 시대가 끝나고 4735만명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 규모가 지금의 세계 10위에서 20위로 추락한다는 비관적 전망도 포함돼 있다.
중국의 실버 쓰나미 속도는 우리보다 더 빠르다. 벌써 65세 이상 인구가 14.9%인 데다 출산율 저하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신생아 수가 2016년 1880만명이었다가 불과 6년이 지난 지난해 950만명으로 반 토막이 났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인구학자인 난카이대 위안신 교수의 말을 인용해 “양육비와 주택 구입비 상승, 여성의 교육 및 지위 향상 등 선진국의 전철을 중국도 그대로 밟아 저출산·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NYT는 “현대 사회에서 실버 쓰나미는 어떤 사회 문제보다 심각하다”면서 “노동력 감소에 따른 경제 저성장, 미래세대에 대한 복지비 부담 전가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