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피해를 본 튀르키예에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 1진으로 파견됐던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소속 강해리(33·) 대원은 ‘생존 골든타임’ 72시간을 넘긴 65세 여성을 기적적으로 구조한 현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켰다. 이 여성은 지난달 11일 구조 당시, 숨진 남편 품에 안긴 채 발견됐다. 강 대원이 전한 구조 현장은 비극적이었고, 처참했다. 또, 막판까지 구조 여부를 확신할 수 없었다.
강 대원은 1일 국민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힘겨워했다.
“생존자 제보 때부터 끝까지 현장에 있었다. 부인이 위에 있고 남편의 주검이 아래쪽에서 있었다. 서로 껴안고 있었다. 부인은 대답이 뚜렷할 정도의 생존자 반응이 있었는데, 남편은 이미 사체 경직이 많이 진행된 후였다. 여성을 빼야 하는데 빠지지 않아서 우는 대원들도 있었다. 어렵게 부인을 구조했다.
빨리 꺼낸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압착 증후군이 있기 때문이다. 피와 체액이 돌지 않는 상태여서 군 의료진이 여성의 팔을 먼저 빼서 온도를 데운 수액을 미리 주사해 피와 체액이 돌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하도록 했다. 그래야 쇼크 없이 꺼낼 수 있다. 그렇게 구조에 3~4시간이 걸렸다. 구조작업 시간은 천차만별인데 이 사례는 오래 걸린 편이다.
생존자를 구조하면 보람을 느꼈느냐고들 물어보시는데 그렇게 표현할 게 아니다. 꺼내는 게 끝이 아니라 안전하게 병원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긴장의 연속이다.”
“이 여성을 구출하는 현장에 가기 직전, 한 유가족으로부터 자녀의 시신을 수습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간 현장이 있다. 안방에서 자던 부모는 베란다를 통해 탈출했으나 다른 방에서 자던 아들은 지진 발생 당일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무너진 아파트 구조물 틈으로 12~13세 정도 돼 보이는 소년의 좌측 반신이 육안으로 보였다. 시신을 수습하려면 건물을 상층부부터 3층 정도 깨부수고 내려가야 하는 상태였다. 충격을 가하면 건물 전체가 붕괴할 위험이 있어 대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었다.
대원들끼리 한참을 망설이다가 부모에게 상황을 설명했는데, 당연히 납득을 못했다. 구조 장비만 빌려주면 본인들이 들어가서 시신을 수습하겠다고, 그것도 안 되면 손이라도 한번 잡게 해 달라고 했다. 혹시 건물이 무너지더라도 우리 탓을 하지 않을 테니 제발 도와 달라고 울먹였다.
결론적으로는 손을 못 댄 주검이었다. 이런 사례가 굉장히 많아 한국에 왔을 때 잠깐 잊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분홍색 옷을 입고 있었다. 비슷한 장면을 뉴스에서 보고 기억이 났다.”
“도착부터 사흘까지는 정신이 없었다. 생존자 제보도 많이 오고 구조대가 바쁘게 움직이는 소리, 절규하는 목소리까지 이곳저곳에서 났다. 그런데 나흘째부터 현장의 공기 자체가 달라졌다. 제보도 덜 들어오고 사람들의 다급한 소리, 차량통행 소리 모두 조용해졌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가고 있구나’를 모두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자다가도 수색해 달라고 하면 자는 구조견들을 깨워 나갔다. 사실 생존자 제보가 아닌 경우가 많았다. 가족들이 사체라도 수습하고 싶어 살아있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원들도 반신반의했지만 열심히 구조하러 나갔다. 야간구조는 훨씬 더 높은 난도와 작업 강도를 요하는데 그래도 나갔다. 그런 걸 현지 사람들이 알아줬다.
이번에 우리가 사용한 장비가 대략 10t 정도 된다. 돌아오기 전에 이걸 현지 재난 당국에 모두 기증하고 왔다. 대원들 중에는 생리대나 본인이 입고 있던 옷까지 개인용품들을 모두 주고, 안이 텅 비어 있는 캐리어만 갖고 온 사람들도 있다.”
“우리 구호대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실력과 자세를 갖고 있다. 다음 현장에 기여하기 위해 우리 팀 자체의 노력 외에도 정부와 시민들의 꾸준한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 구호대가 이번에 사용하고 기증한 장비, 텐트 외에도 10년 이상 된 노후 피복, 안전 신발 등을 새로 마련하기 위해 약 38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한국 구호대가 이번 한 번의 성과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꾸준한 응원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