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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전직 대통령인데…” 장난 전화에 속은 메르켈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을 사칭한 남성에게 속아 전화로 정세를 논의한 사실이 뒤늦게 공개됐다고 20일(현지시간) AP통신이 보도했다.

메르켈 전 총리 집무실은 지난달 12일 한 남성이 자신을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이라고 소개한 뒤 통화를 이어갔다고 전했다.

이 남성은 메르켈 전 총리와 우크라이나·벨라루스 내 정세를 논의하고자 했다. 벨라루스는 러시아의 우방으로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를 돕고 있다. 통화에는 독일 외무부 소속의 통역사도 동원됐다.

집무실은 “(메르켈 전 총리는) 상대방이 전화 목적을 밝히지도 않고, 질문 주제가 계속해서 바뀌어 전문가답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고 밝혔다.

전화를 건 남성의 정체는 장난 전화로 악명이 높은 러시아 유튜버 블라디미르 크라스노프와 알렉세이 스톨야로프(보반과 렉서스)로 드러났다.

보반과 렉서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가수 엘튼 존과 해리 왕자 등을 상대로도 비슷한 전화를 걸어 유명인들이 진땀을 빼게 한 장본인이다.

이들이 텔레그램에 공개한 녹음 파일에서 메르켈 전 총리는 “민스크 평화협정이 우크라이나에 소중한 시간을 벌어줬다”고 언급했다.

민스크 평화협정은 2015년 메르켈 전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전 대통령의 중재 하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포로셴코 전 대통령 등이 만나 맺은 평화 협정이다.

메르켈 전 총리는 이전에도 민스크 협정이 유명무실해진 것은 사실이나 우크라이나에 국방력을 보충할 시간을 벌어줬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해왔다.

메르켈 전 총리는 2005년 독일 첫 여성 총리에 올라 큰 지지를 받다가 2021년 12월 퇴임했다.

재임 시 러시아와 유대를 강화했던 그는 퇴임 직후인 지난해 2월 러시아가 끝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전쟁 발발을 막지 못했다는 눈총을 받아야 했다.

총리 재임 당시인 2008년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에 반대해 러시아가 침공할 여지를 만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원유에 지나치게 의존해 유럽 에너지 위기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번 녹음 파일에는 민스크 평화협정에 대한 언급 외에도 메르켈 전 총리가 벨라루스 독재 정권의 탄압을 비판하는 목소리 등이 담겼다고 AP는 전했다.

김은초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