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0.25% 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그러나 올해 최종 금리 수준은 상향 조정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뒤집고 지난해 관측 수준(5.1%)을 유지했다. 물가대응과 금융 시스템 안정이라는 서로 상충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절충안으로 분석된다. 연준은 은행 시스템 불안에 따른 신용경색 가능성을 우려하면서도 올해 금리 인하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준은 22일(현지시간) 이틀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치고 기준금리를 4.75~5.00%로 0.25% 포인트 인상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제로(0) 수준이었던 금리는 1년여 만에 5% 가까이 오르며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게 됐다. 한국(3.5%)과의 금리 차는 2000년 이후 22년여 만에 최대 역전 폭인 1.5% 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연준은 올해 최종 금리 수준을 지난해 12월 전망치와 같은 5.0~5.25%로 제시했다. 향후 한 차례만 더 베이비스텝(0.25% 포인트 인상)을 밟으면 연준이 제시한 수치에 도달하게 된다. 금리 인상 국면이 사실상 마무리 단계라는 의미다.
연준의 결정은 복잡한 시장 상황을 반영한 줄타기 성격으로 풀이된다. 실리콘밸리은행(SVB), 시그니처은행 등 지방 은행 연쇄 파산으로 금융 시스템 불안이 커졌지만, 인플레이션 데이터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단호한 긴축 의지는 은행 시스템 위기를 키울 수 있지만, 이를 뒤집으면 물가 대응이 어려워질 수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달 초 빅스텝(한 번에 0.5% 포인트 금리 인상)과 최종 금리 수준 상향 가능성을 시사했었다.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 발언에도 이 같은 속내가 녹아있다. 파월 의장은 “사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지난해 12월 회의 때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금리 인상이 필요해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2주 동안 발생한 은행 시스템 사건으로 가계와 기업에 대한 신용 조건이 더 엄격해져서 노동시장과 수요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은행 위기로 재정 건전성을 우려한 금융 기관들이 대출 조건을 까다롭게 해 시장으로의 유동성 공급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파월 의장은 “금융여건의 긴축은 원칙적으로 사실상 금리인상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위기 확산을 우려한 은행의 조치가 연준의 긴축 통화 정책 효과를 낼 것이라는 의미다. 고강도 긴축을 지속하면 미실현 손실에 노출된 은행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무보험 예금 고객들의 뱅크런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파월 의장은 “우리 은행 시스템은 건전하고 강력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쓸 준비가 됐다”며 당국의 지속 대응 의지도 강조했다. 연준은 신용경색 가능성에 따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0.5%에서 0.4%로 하향 조정했다.
파월 의장은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지난해 중반 이후 어느 정도 완화되었지만 최근 수치의 강세는 압력이 계속해서 높게 유지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노동 시장도 계속 빡빡하다”고 말했다. 긴축을 멈출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파월 의장은 “금리 동결도 검토했지만, 우리 언행에 신뢰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금리 인상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파월 의장은 특히 “(FOMC 회의) 참석자들이 올해 중 금리인하를 전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라며 “연준은 연내 인하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우리가 금리를 더 올릴 필요가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시장은 연준의 긴축 의지가 약해진 것으로 해석하고 하반기 금리 인하 기대감을 드러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서는 이날 조치로 연준의 긴축이 종료됐다는 전망이 과반을 차지했다. 하반기부터 금리 인하가 시작돼 연말쯤 4% 초중반까지 내려갈 것이라는 관측이 다수를 이뤘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