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만7000㏄’. 이종호 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교수가 1978년부터 최근까지 헌혈한 양이다. 그는 한 번에 550㏄씩 뽑는 헌혈을 무려 340차례나 했다. 44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근무지 근처에 있는 혈액원을 찾아 혈액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자신의 피를 내주었다.
인천 주안장로교회(주승중 목사) 안수집사인 이 교수는 20일 서울 한양대 연구실에서 “헌혈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과 복음을 나누는 일”이라며 “긴 세월 동안 신앙인으로서 헌혈을 사명처럼 여기고 살았다”고 말했다. 그가 첫 헌혈을 한 건 고등학생 때였다. 청소년적십자(RCY)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헌혈을 알게 된 게 계기였다. 대학에 간 뒤에도 적십자사 봉사 활동을 하며 꾸준히 헌혈에 참여했다.
이 교수에게 헌혈이 봉사에서 사명으로 바뀐 첫 계기는 아버지의 백혈병 때문이었다. 그는 “80년대 중반 아버지께서 백혈병에 걸리면서 3년간 투병하셨던 일이 있었는데 나와 아버지의 혈액형이 맞지 않아 발만 동동 굴렀었다”고 기억했다. 이 교수의 혈액형은 AB형으로 B형이었던 아버지에게 피를 줄 수 없었다.
다행히 이 교수가 지도하던 학생들이 나섰다. 그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헌혈에 참여했고 어떤 학생은 무려 14차례나 헌혈을 한 뒤 헌혈증은 건네줬다”면서 “이를 통해 헌혈이 사명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그는 100차례 헌혈을 했던 터였고 받은 은혜를 다른 이웃에게 갚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꾸준히 헌혈의 집을 찾던 이 교수에게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 건 2006년이었다. 아내와 두 딸이 탄 버스가 사고로 고속도로에 정차해 있던 트럭을 들이받은 사고였다. 당시 버스에는 한 기도원에서 열린 수련회에 참석했던 교회 교인들이 여럿 타고 있었다. 이 사고로 8명이 사망했고 대부분 교인이 중상을 입었다.
그의 아내와 두 딸도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았다. 이 교수는 “아내는 이가 11개가 빠졌고 전신 골절로 한 차례 숨이 멎기까지 했었다”며 “딸들은 50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지만 아내는 무려 1년 동안 입원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에도 수혈을 통해 가족들이 생명을 유지했다”며 “헌혈자들에게 또다시 감사했던 순간이었다”고 했다.
이후 헌혈에 대한 의지가 더 커졌다고 했다. 이 교수는 “헌혈을 200차례까지 해 우리 가족이 받은 은혜를 나누기로 마음먹었다”면서 “당시 세운 목표를 훌쩍 넘어 340차례까지 헌혈을 한 건 결국 이 두 차례의 경험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요즘도 2주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한양대역 안에 있는 헌혈의 집을 찾아 ‘성분 헌혈’을 한다. 성분 헌혈이란 채혈 혈액을 혈구와 혈장 성분으로 분리한 뒤 필요한 부분만 채혈하고 나머지는 헌혈자에게 되돌려 주는 방식이다. 이 교수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헌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모두에게 주신 값진 생명을 나누자”고 권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