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연일 ‘악수(惡手)’를 두면서 러시아가 고립무원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친러 정부가 들어선 세르비아 헝가리를 제외하면 유럽 전체가 등을 돌린 상태이며, 전통적인 우방국인 터키마저 발을 뺐기 때문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시간) “푸틴이 내놓는 대서방 강경조치들은 되레 미국과 나토, 유럽을 단일대오로 단결시키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전날 천연가스 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하는 실력행사에 나섰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는 물론 한·일 등 서방 진영 40개국이 모여 우크라이나에 대한 막대한 무기 지원을 결의한 직후였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지난 1일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 등 러시아가 지정한 비우호국에 러시아 가스 구매대금 결제를 루블화로 하도록 강제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한 바 있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회사 가즈프롬이 제공하는 천연가스는 러시아의 대유럽 최고 수출품목이다.
그러나 EU와 나토 가입국인 폴란드, 불가리아는 러시아의 조치에 대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더 강경한 메시지를 내놨다. 폴란드는 “우리의 천연가스 에너지 의존도는 10%도 되지 않으며 만약 러시아산을 들여오지 못한다 해도 대체선이 분명하게 있다”고 밝혔다. 불가리아도 “이미 내년치까지 충분한 천연가스를 비축했다”며 요동도 하지 않았다. 되레 두 국가는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다음은 우리 차례”라며 더욱더 나토에 밀착하는 모양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줄곧 친러 외교정책을 펼쳐온 독일도 마찬가지다.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매우 소극적이던 태도를 버리고 지금은 중화기까지 대량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여전히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중단하지 않았지만 올라프 숄츠 독일 정부는 대체 수입선을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의 군사력에 위축돼 있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스웨덴과 핀란드마저 영구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고 나토에 가입하려는 움직임을 구체화한 상태다.
만약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보다 더 큰 안보 위협에 시달리게 된다. 핀란드의 지정학적 위치는 동유럽 쪽에 치우친 우크라이나와 훨씬 다르다. 핀란드 국경에서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는 200여㎞밖에 되지 않으며, 바로 동남쪽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모스크바가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 핵심부 코앞에 나토 병력이 주둔하게 되는 셈이다.
이처럼 위기에 몰리자 푸틴 대통령은 다시 한번 보복 으름장을 놨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의회 의원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누군가 외부에서 우크라이나 상황에 개입해 허용할 수 없는 전략적 위협을 조성할 경우 전격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이를 위한 모든 수단을 갖고 있다. 러시아 외에 누구도 그런 수단을 갖고 있다 자랑할 나라는 없다”며 핵무기 사용 불사의 뜻이 담긴 언급도 했다.
NYT는 “푸틴의 모든 결정이 유럽 전체를 러시아의 적으로 둔갑시켰다”며 “현재 러시아에 우호적인 국가는 중국 북한 이란과 일부 비동맹 제3세계 국가들밖에 남지 않았다”고 평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