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현지시간) 찾아간 미국 워싱턴DC 사립학교 에드먼드 버크 스쿨은 출입문이 굳게 잠긴 채 텅 비어 있었다. 학생들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인근에서 만난 에릭 슈피너는 “아마 휴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는 이틀간을 ‘마음과 몸 회복의 날’로 정했다.
휴교는 지난 22일 오후 발생한 끔찍한 총격 사건 때문이었다. 슈피너는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난데없이 총격이 시작됐고, 유리창이 깨지더니 시민과 학생들이 뛰쳐 나왔다”며 “모두가 정말 끔찍한 트라우마를 겪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총격은 학교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한 아파트 5층에서 시작됐다. 그곳은 학교를 바로 내려다볼 수 있어 조준 사격이 가능해 보였다. 23세 청년 레이먼드 스펜서()는 아파트 창문에서 학교와 거리를 겨냥해 200여발을 발포했다. 12세 소녀 등 4명이 다쳤고, 이 중 2명은 중태다. 스펜서는 범행 후 경찰이 들이닥치기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번 사건은 현재 미국 사회에서 공공안전에 대한 공포심을 키우고 있는 여러 요소가 모두 담겨 있어 두려움을 더하고 있다.
범행에는 최근 총기 범죄의 핵심으로 떠오른 고스트건(유령총)이 사용됐다. 고스트건은 총기 부품을 따로 산 뒤 조립해 만든 불법 총이다. 일련번호가 적히지 않은 부품을 개인이 집에서 조립해 만든 것이어서 추적이 어렵다. 쉽게 구할 수 있고 정부 감시망을 피한 은밀한 거래도 가능하다.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무차별 저격 범죄 가능성도 크다. 경찰은 스펜서가 학교를 목표물로 삼은 건 분명한 것 같다고 설명했지만 이 학교와의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꽤 구체적으로 범행을 계획한 듯했다. 경찰은 스펜서가 페어팩스 카운티에 자택이 있지만 지난 1월 범행 장소를 따로 임대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아파트 거실에는 가구가 거의 없었다. 대신 화장실에서 장총 4자루와 권총 2자루, 총알 800여발, 저격용 삼각대, 노트북, 담요 등이 발견됐다.
범행 장소는 워싱턴DC 북서쪽 코네티컷 거리로, 백악관에서 불과 5㎞ 떨어져 있었다. 컬럼비아대가 근처이고, 아파트와 상점들도 밀집해 있다.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던 셈이다.
스펜서는 은둔형 외톨이처럼 보였다. 가족과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고, 사회적 활동도 거의 없었던 듯했다. 로버트 콘테 워싱턴DC 경찰청장은 “외로운 늑대(lone wolf) 범죄의 전형”이라며 “지역 사회 전체에 대한 트라우마적 상황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비슷한 형태의 범죄는 거의 매일 발생하고 있다. 27일 오하이오주 맨스필드에서 총기 난사로 16세 소녀가 사망했고, 마이애미의 한 고등학교 인근에서도 총기 난사로 1명이 죽었다. 미시시피, 보스턴 등 다른 지역에서도 총격 사건으로 여러 명이 다치거나 죽었다.
고스트건 사용도 빈번하다. 고스트건은 지난해 범죄 현장에서만 약 2만정이 확인됐다. 5년 전보다 10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수사기관은 올해도 고스트건 969정을 압수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증가한 것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초 고스트건 규제 대책을 발표했는데, 외신들은 총기규제를 통한 범죄 대응을 오는 11월 중간선거의 주요 의제로 삼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