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아시아 국가들이 저마다 국방 상황 등 대외 정책을 분주히 점검하고 있다. 전통적인 화약고로 평가받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불확실성도 증가하는 가운데 아시아에서 집단적인 군비 증강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싱가포르 연구기관 ISEAS-유소프 이샥 연구소 소속 윌리엄 충 선임연구원은 2일(현지시간)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중대한 전쟁의 귀환은 아시아 국가가 군대를 증강하도록 이끌고 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폭력적인 충돌(전쟁)은 구식’이라는 냉전 이후의 사고방식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고 평가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무력과 같은 전통적인 ‘하드파워’의 중요성을 전세계에 상기시켰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러 아시아 국가가 국방에 요구되는 사항을 재평가하게 했다”며 “인도·태평양의 경우 유럽연합(EU)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같은 안보 연합이 없고, 남중국해, 대만, 한반도, 센카쿠열도 등 불안정한 ‘핫스폿’을 보유했다”고 강조했다.
최근 중국의 움직임은 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지난달 19일 중국과 남태평양 솔로몬 제도 사이에 체결된 안보 협정이 대표적인 예다. 협약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이 솔로몬 제도에 해군 파견을 허용하는 것이 주요 내용으로 알려지자 미국과 일본 등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 솔로몬의 안보 협정을 ‘중국의 남태평양 진출’에 대한 야욕으로 간주한다.
솔로몬 제도가 전략적 요충지로서 기능하는 만큼 이를 둘러싼 갈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솔로몬 제도의 수도가 위치한 과달카날 섬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과 미국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호주에서 2000㎞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특히 세계 2차 대전 당시 호주는 일본군에 대항하는 남태평양 최후의 보루였다. 중국이 솔로몬 제도에 해군을 파견할 수 있다는 것은 미국과 호주, 일본을 포함해 남태평양 전체의 긴장이 증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에 맞서기 위한 미국·영국·호주 3국 간의 군사협력 조약인 ‘오커스’(AUKUS)도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니혼게이자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자신들의 내륙과 해상의 실크로드경제벨트(일대일로) 전략에 차질이 생기자 최근 태평양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서쪽으로 확장되는 경제권을 만들려는 시도가 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중단되자 태평양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서방의 대치가 격화될 경우 동아시아의 군비 지출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충 연구위원은 일본은 이미 우크라이나 침공 전부터 중국의 급격한 군사력 확대와 북한 핵 프로그램에 대응해 10년 연속 국방비를 증가했고, 대만에서도 미국과의 무기 거래가 더 발표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핵 무기에 대한 욕구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에서 정책 입안자들은 여전히 미국의 핵방패(nuclear shield)에 의존할 수 있는지 우려한다”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1991년 철수한 미국 전술 핵무기 복귀를 요청할 태세”라고 말했다. 충 연구위원은 윤 당선인의 한·미 동맹 강화 발언과 선제 타격 역량 개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추가 배치 공약을 그 근거로 들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