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이미 뇌막염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어머니는 시각이 아닌 촉각으로 아들을 봤다. 얼굴을 만져 아들의 이목구비를 짐작했고, 몸을 더듬어 아들의 성장 속도를 가늠했다. 특히 매년 1월 1일이면 가정예배를 마친 뒤 아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더듬고선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 철수가 벌써 이만큼 컸구나.”
어머니는 2002년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0년이 흘렀지만 아들은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여전히 흥건한 그리움을 느끼곤 한다. 아들은 언젠가 하나님 나라에서 어머니를 재회할 순간을 상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천국에 계신 어머니는 이제 앞을 보고 계실 겁니다. 매일 새벽이면 걸어서 1시간 거리에 있는 교회까지 어머니 손을 잡고 걸었던 아버지도 어머니와 함께 계시겠죠. 훗날 제가 천국에 가면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실 거 같아요. ‘아이고, 네가 내 아들이구나, 우리 막내구나….’ 그때가 되면 손이 아닌 눈으로 저를 보시게 되겠죠.”
나철수(60) 경남 밀양시민교회 담임목사는 어버이날을 사흘 앞둔 5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듯 애끊는 사모곡을 들려줬다. 그는 자신의 삶에 선명한 신앙의 무늬를 남긴 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를 전했는데 간추리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어렸을 때 나 목사는 어머니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시각장애인에게 ‘소경’이나 ‘맹인’ 같은 단어가, 때론 차마 입에 올릴 수도 없는 멸칭이 따라붙던 시기였다.
그는 어머니가 장애인인 탓에 자주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겪은 일이 대표적이다. 담임교사는 학부모들까지 모인 교실에서 나 목사의 어머니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나 목사는 “당시 내 책상에 친구들과 그들의 부모가 준 빵이 수북하게 쌓였는데 그런 상황이 너무 싫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성경 속 시각장애인과 관련된 대표적인 메시지는 요한복음 속 이 구절일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 목사는 장로회신학대에 진학해 목회자가 되는 꿈을 좇기 시작했지만 이 말씀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비로소 주님의 뜻을 실감한 건 30대가 돼서였다. 어머니는 매일 새벽이면 홀로 방에서 3시간 가까이 기도를 드리곤 했는데, 어느 날 기도 소리를 듣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만약 어머니가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이었어도 저렇게 열심히 기도를 드릴까’ ‘시력을 잃었기 때문에 기도하는 시간을 갖게 됐고, 그 덕분에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내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니 나 목사는 비로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어머니를 추모하며 성도들과 함께 시각장애인을 돕는 사랑을 실천했다. 나 목사와 밀양시민교회 성도들은 지난 1일 시각장애인 각막이식 수술비 지원 사역을 벌이는 ㈔생명을나누는사람들(이사장 임석구 목사)에 후원금 300만원을 전달했다. 나 목사는 “부활절에 성도들에게 헌금하자고 독려해 300만원을 모을 수 있었다”며 “캠페인에 참여하고 나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나 목사는 후원금 전달식 이튿날인 2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성탄절에 (후원금 모금을) 해 보려고 했는데 코로나 탓에 먼저 해야 하는 일들이 있어서 못했고 이번 부활절을 통해 후원비를 드리게 됐습니다. 꿈에 엄마가 나타나 잘했다고 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꿈에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 어머니에게 감사합니다. 특히 신체에 장애를 갖고 자녀를 위해 헌신하시는 부모님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건강하기를 기도합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