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숱한 공연을 펼쳐온 한 펑크 밴드 리더는 얼마 전 한 TV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코로나19 기간 겪은 어려움을 이렇게 풀어냈다. “중세 시대에 흑사병이 돌았잖아요. 그 후 르네상스 문화가 더 부흥했다고 하더라고요. 마포, 홍대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 피렌체와 닮아있는 것 같아요.”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 삶의 많은 영역을 갉아먹었고 기독 문화계 역시 타격을 받았다. 기독교 음악이나 공연 현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이들 역시 코로나 여파를 온몸으로 겪었을 터였다. 백종범 백석예대 교회실용음악과 겸임교수(목사)와 김효식 헤리티지 미니스트리 대표를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났다. 백 목사는 홍대에서 ‘수상한 거리’란 이름의 기독 문화 공간을 운영하며 오랫동안 다음세대를 대상으로 선교해왔다. 김 대표는 유명 블랙가스펠 그룹 ‘헤리티지’ 리더다.
이들 역시 펑크 밴드 리더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김 대표는 “업계에서 가장 어려웠던 두 사람을 부른 거냐”며 웃었다. 백 목사도 “살아남으려 가장 발버둥 쳤던 이들을 부른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며 이들에게 발견한 것은 어려움이 아니라 더 큰 희망이었다.
=시대가 좋든 나쁘든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걸 존재 이유로 삼고 사명으로 삼는, 그래서 문화를 만들어가는 혁신적인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홍대 아닌가. 기독 문화 현장도 끊임없이 문화가 만들어지고 알려지는 곳이자 이를 받아들이는 이들이 생기는 곳인 만큼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여전히 활발하게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기독교 문화를 펼치지 못해 마치 한국이 기독교 금지국가가 된 듯했다. ‘기독교는 공공장소에서 공연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큰 장애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실내로 들어가게 되면 우리끼리만의 문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으론 무척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관련 종사자들이 위기 해결을 위한 문제의식을 느끼면서 수동적인 문화 소비에서 벗어나 더 능동적으로 변화한 측면도 있었다. 과거엔 대형교회 집회에 주로 의존했다면 지금은 작지만, 새로운 무대 속에 숨겨진 가능성과 희망을 찾고 있다.
=아티스트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사라지고 무너지는 걸 봤다. 한 치 앞도 예상하지 못 하는 상황이었다. 그저 버티는 것에 집중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였던 것 같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이도 있었고, 버티는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작품에 집중하고 또다시 올 위기에 맞설 본인만의 해결책을 고민하는 이도 있었다. 각자의 철학과 색깔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고 확신한다. 또 이전엔 교계의 대형 집회 위주로 공연이 이뤄졌다면, 이제는 유튜브 등을 통한 사역자와 콘텐츠의 다양성이 풍부해졌다고 본다.
=문화 영역 속에도 나름의 생태계가 있고 선교의 역할이 있는데 기성 교회가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정답만 주려 한 아쉬움이 있었다.
=한 대형교회의 경우 몇십만 원에 불과한 문화사역자 출연료를 지난 20여년 째 올려주지 않았다. 국내 대표적인 선교 지향 교회로 잘 알려진 그 교회조차 기독 문화를 선교 차원이 아니라 그저 예배의 보조 수단으로만 본다는 선포 같았다. ‘교회에서 장사하려 하나’는 눈초리를 이겨낼 문화 사역자는 없다. ‘안 가면 그만이지’ 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수상한 거리’가 코로나를 버틸 수 있었던 건 대형교회의 지원이 아니라 그보다 작은 교회의 섬김과 존중 덕분이었다. 하지만 교계는 그동안 문화 사역자들의 실패를 포용해주고, 회복을 돕는 지원이 부족했던 것 같다. 나아가 문화 영역은 하나님의 질서 속에서 창조적인 공간이 돼야 한다. 사역자들이 창의적으로 활동할 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문화 영역 속에서 다음세대의 역할을 이해해주고 지원해줄 때 이 시대 선한 영향력을 끼칠 힘이 생긴다고 본다.
=코로나를 지나며 기독교 신앙을 담고 있으면서도 자유롭고 소비층이 넓은 음악을 소비할 시장을 유튜브가 열어줬다고 본다. 교회에서 소개되지 않은 문화 사역자들이 유튜브를 통해 다시 교회로 들어온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교계 음악과 문화 콘텐츠가 교회 예배 현장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시장이 구축돼야 한다. 또 백 목사님 말씀처럼 규모가 작은 교회도 문화 사역자를 존중해주고 그 활동을 충분히 독려해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한국교회도 이제는 개교회주의에서 벗어나 긴 호흡으로 문화 선교 전략을 함께 짜고 동시대적 고민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가가 청년들의 창업을 지원하듯 기독 문화업계 종사자와 다음세대가 과감히 도전하고 자생할 수 있는 시스템과 기반 구축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삶 속에서 예배하며 살아내야 하는 요즘, 기독 문화는 개인의 신앙 성장을 돕는 것에서, 나아가 사회에 기독교가 지닌 아름다움을 전하고 사회의 아픔에 공감해줄 수 있다고 본다.
=기독교가 이기적이지 않고 진리를 고수하는 일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알리는 이미지 쇄신이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자연스럽게 세상에 기독교 신앙을 녹여내는 접점이 되고, 일방적이기보다는 이 시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도구 중 하나가 기독 문화라고 본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