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유럽 국가들이 전쟁 출구 전략을 놓고 곳곳에서 부딪히는 모양새다. 러시아와 가까운 북유럽 및 동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승리가 안보 위기를 해소한다며 연일 강경론을 펼치고 있지만, 프랑스 독일 등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조속한 휴전 협상을 주장하며 확전을 경계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프랑스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역사적이고 근본적인 실수를 저질렀다”면서도 “우리는 외교적인 경로를 통해 출구를 마련하도록 러시아에게 굴욕감을 줘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전쟁 장기화로 세계 경제가 피해를 보고 있는 만큼 우크라이나의 영토 수복 등 완전한 승리는 불가능하고, 러시아의 체면을 살려주는 선에서 우크라이나가 휴전 협상에 임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이런 입장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전쟁 전에도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우크라이나는 즉각 반발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푸틴에게 굴욕감을 주지 말라는 요구는 프랑스와 다른 모든 국가들에게 굴욕감을 주는 것일 뿐”이라면서 “러시아는 스스로 굴욕감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쟁의 출구전략을 둘러싼 유럽 국가 간 분열 양상은 갈수록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는 포린폴리시와의 인터뷰에서 “(휴전 협상으로 인한)평화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라는 인식은 틀렸다”고 주장했다. 칼라스 총리는 러시아가 전쟁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평화협정이 체결될 경우 조지아 몰도바 핀란드 등 러시아와 인접한 다른 유럽 국가들도 러시아의 침략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영국과 폴란드, 그리고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발트 3국도 연일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승리’를 강조하며 러시아를 완전히 제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소련의 지배를 겪었던 동유럽 국가들은 전쟁의 승리가 안보 문제와 직결된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에게 무너지면 다음은 조지아, 몰도바, 그리고 핀란드 순으로 무너진다는 도미노 이미지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한 바 있다.
반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최근 전쟁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달 28일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즉각적인 휴전 및 평화협상 개시를 촉구했다. 이탈리아 외무부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유엔 등에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와 크림반도·돈바스 지역의 영토 문제에 대한 타협 등을 포함한 ‘평화 로드맵’을 제시했다.
유럽에서 전쟁에 대한 입장이 엇갈리면서 국제사회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쟁 초기에는 비교적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터진 인플레, 총기 난사 등 각종 현안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