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 수출량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전 세계 식량 공급처 역할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곡물의 95%는 흑해를 통해 해상으로 수출된다. 하지만 러시아의 침공으로 흑해 항구가 막히면서 밀을 포함한 2000만t의 곡물이 오도 가도 못한 채 대기하고 있다. 이 물량은 전 세계 4억명가량이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타라스 비소츠키 우크라이나 농업부 제1차관은 7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린 국제곡물협회(IGC) 화상회의에서 “흑해 봉쇄 해제 없이는 월간 최대 200만t을 수출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여파로 전 세계 곡물 가격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40% 가까이 수입하는 아프리카는 곡물 가격이 약 23% 급등했다. 전쟁으로 전 세계 식량 위기가 닥치고 있는 셈이다.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항구에 발이 묶인 곡물을 반출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일단 육로 수출이 검토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우크라이나와 유럽 국가의 철도 궤도 넓이가 달라 기차에서 물품을 내렸다 다시 싣는 추가 작업 등으로 운송비가 더 들기 때문이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흑해 항구 개방이다. 실제 러시아와 협력관계를 이어온 터키는 급박해진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중재자를 자임하며 전방위 외교를 펼치고 있다. 훌리시 아카르 터키 국방장관은 흑해 항구 개방 협상과 관련해 터키 정부가 유엔,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진전을 보인다고 밝혔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2개 항구에서 곡물을 수출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은 “우크라이나 베르단스크 항구, 마리우폴 항구가 정상적으로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지난 3일 “우크라이나가 몇 가지 조건을 받아들이면 우크라이나 곡물을 실은 화물선 통행을 보장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해상 운송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다. 가디언은 이 같은 노력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흑해에 설치한 기뢰 때문에 타격을 받게 됐다고 전했다. 마르키얀 드미트라세비치 우크라이나 농업식품부 장관 보좌관은 흑해 항구 주변에는 수천개의 기뢰가 떠다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기뢰를 제거한다면 작업이 연말까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는 기뢰 제거 작업을 돕겠다고 했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기뢰가 제거될 경우 오데사 등 주요 항구가 러시아의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항구가 개방되더라도 기뢰 작업이 이뤄지는 올 연말까지는 곡물 수출이 제대로 이뤄질 가능성이 작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식량 위기 대처 방안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 미국은 벨라루스 철도로 우크라이나 곡물을 운송할 수 있게 벨라루스의 칼륨 비료 산업에 대한 제재를 6개월 면제하는 제안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한명오 기자 myung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