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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추앙한다면 이젠 교회로 [임보혁 기자의 ‘예며들다’]


어느 한 가정의 주일 아침 풍경입니다. 어린 자녀부터 부모까지 교회에 가려는 듯 옷을 말끔히 차려입느라 분주합니다. 외출 준비가 끝난 가족들은 집을 나섭니다. 하지만 문밖을 나선 이들은 이내 다시 집으로 들어갑니다. 외출복을 그대로 입고 거실에 모여 앉은 가족들은 TV를 켭니다. 섬기는 교회에서 생중계하는 온라인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마치 실제 교회에 온 듯 자세를 고쳐 잡습니다. 팬데믹 시대에 온라인 예배가 자리 잡아가던 때 들었던 재미난 일화 중 하나입니다.

전염병으로 교회에 모이기 어려웠던 지난 2년여 동안 많은 성도는 각자의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겠지만, 집에서 온라인으로 드리는 예배에 집중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씻지도 않고 잠옷을 그대로 입은 채 TV 앞에 앉아 예배를 드리거나, 예배가 진행될수록 소파와 한 몸이 되는 경험도 합니다. 앞선 가정도 고육지책으로 저렇게 해서라도 예배에 집중하고 싶었을 거라 생각하니 ‘웃픈’(우스우면서도 슬픈) 감정이 들었습니다.

팬데믹의 끝, ‘엔데믹’을 향해가는 요즘 점점 대면 예배가 정상화 궤도에 올라가고 있지만, 여전히 온라인예배를 드리며 교회에 나오지 않는 이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굳이 교회에 나가지 않더라도 온라인으로 드리는 예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한편에선 교회라는 건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는 무형의 성전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초기 기독교 이단으로,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인 예수님을 부인하고 폄훼하는 ‘영지주의’와도 연결돼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장소로서의 성전은 예수님이 오시면서 예수님만이 참 성전이시며, 그의 지체인 우리가 성전이라는 개념으로 바뀌긴 했습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임재를 누리는 것이 진정한 성전 건축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몸이 아닌 영으로 온전히만 예배드리면 다 된다는 생각은 경계해야 합니다. 성경은 몸으로 찬양하고, 봉사하고 서로 교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모여야 하는 이유는 우린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팬데믹을 지나며 많은 이들이 공동체와 함께하지 않으면 신앙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걸 느꼈을 겁니다. 그래서 성경엔 ‘서로’란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재능, 은사도 공동체 안에서 발현되게 돼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 예배와 성도 간 수평적 교제를 통해 비로소 완성됩니다.

‘교회’를 의미하는 헬라어 ‘에클레시아’란 단어에는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공동체성이 담겨있습니다. 교회는 건물과 조직을 뛰어넘는 공동체이며,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건, 그런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받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배의 자리에 나와 받은 은혜의 힘으로 세상에 다시 나가 각자의 자리에서 예배자의 모습으로 살아내라고 말씀합니다. 모이는 예배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물론 영상으로 드리는 예배를 순전히 ‘악’으로만 볼 건 아닙니다. 다만, 예배를 온전히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이를 두고 한 목사님은 이렇게 되물으며 명확한 답을 내려주셨습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영상 통화로 만족할 수 있는가?”

옛 속담에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공동체를 사랑한다면 그를 만날 유형의 자리로 나와야 합니다. 예배를 의미하는 ‘워십(worship)’은 ‘하나님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란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당장 이번 주일, 하나님을 가치 있게 하는 일에 동참하길 소원합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