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이 19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에서 엄수된다. 사원의 정식 명칭은 ‘웨스트민스터 세인트 피터 성당 참사회’(Collegiate Church of St. Peter in Westminster)이며 지금은 성공회 교회당이다. 11세기 참회왕 에드워드가 세운 세인트 페트로 성당이 모체이다. 13세기 헨리 3세의 지시로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고딕 양식으로 완성됐다.
설립 이후 역대 왕들의 대관식과 장례식 등 왕실의 역사적 행사들이 거행됐고 영국 왕과 위인들이 묻혔다. 1066년 정복왕 윌리엄을 비롯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이르기까지 역대 왕들이 이곳에서 대관식을 올렸으며 또한 이곳에 묻혀 있다. 1997년에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장례식이 치러지기도 했다. 지금은 건물 절반이 교회당으로 사용되고, 나머지는 박물관으로 쓰인다.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은 19일 오전 10시 44분(현지시간) 여왕의 관이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옮겨지면서 시작된다. 장례식은 예배로 진행된다. 웨스트민스터 데이비드 호일 학장이 주관하며 저스틴 웰비 켄터베리 대주교가 설교를 전한다. 리즈 트러스 총리도 메시지를 낭독한다. 장례예배는 오후 12시까지 1시간가량 진행되며 오전 11시55분 쯤 끝나면 나팔 소리와 함께 영국 전역은 2분간 묵념에 들어간다.
장례식이 끝나면 여왕의 관은 12시15분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출발해 호스 가드 퍼레이드 광장, 더 몰, 버킹엄 궁을 지나 오후 1시 웰링턴 아치에 도착한다. 이후 여왕의 관은 영구차에 실려 오후 3시를 조금 넘겨 윈저성 내 성 조지 교회로 옮겨진다. 여왕은 지난해 먼저 별세한 남편 필립공 옆에 안장된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국 성공회 성당들 중에서도 가장 고교회파(전통과 의식을 강조)에 속한다. 벽 제대를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성공회 전례 중 가장 전통적인 형식으로 전례를 행한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서쪽 문 위쪽 외벽 벽감에는 20세기에 순교한 대표적인 기독교 신자 10인의 조각상이 설치돼 있다. 인물들은 성공회 신자들만 국한돼 있지 않은 게 특징이다. 개신교 목사와 로마 가톨릭 대주교, 수사신부, 정교회 수녀도 포함돼 있다. 개신교 인물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 왕즈밍 목사(王志明, 중국 개신교 목회자로 문화대혁명 때 중국 공산당에 의해 처형 당함) 등이 있다.
무엇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개신교 역사에서 중요한 장소다. 종교개혁 칼뱅주의 신학과 신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표준 문서를 집대성한 곳이기 때문이다. 표준 문서들은 영국의 청교도혁명 당시 올리버 크롬웰이 호국경으로 재임하고 있던 시기인 1643년 7월 1일부터 1649년 2월 22일까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30명의 평신도(하원의원 20명, 상원의원 10명)와 121명의 잉글랜드 성직자, 그리고 스코틀랜드 장로파 대표단 8명이 참여하는 회의(Assembly)를 개최해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대교리문답, 소교리문답 등을 완성했다. 이 문서들은 청교도신학과 개혁주의 신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는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원래 영국과 스코틀랜드 청교도들의 교리적 통일과 유럽 내 개혁파 교회들과의 연결을 목적으로 작성됐다. 웨스트민스터 회의는 장로교 형태의 교회 조직을 선택했고 의회에 영국 국교회를 위해 이를 채택하도록 권고했다. 스코틀랜드(1647년)와 영국 의회에서(1648년) 인준을 받았다. 고백서는 스코틀랜드 종교개혁가인 존 낙스의 신앙고백과 제네바 신앙고백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전문 33장으로 되어 있는 고백서 주요 내용은 첫째 성경의 절대적 권위, 둘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 셋째 양심의 권리, 넷째 교회 자체의 치리권 등이 담겼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미국 장로교 역사 가운데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한국 장로교 역사에도 교리적인 표준문서들로서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한국교회 주요 장로교단은 헌법에 이를 채용하고 있다. 실제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는 헌법 신조에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대한예수장로회에서 이 아래 기록한 몇 가지 조목을 목사와 강도사와 장로와 집사로 하여금 승인할 신조로 삼을 때에 대한 예수교장로회를 설립한 모(母) 교회의 교리적 표준을 버리려 함이 아니요, 오히려 찬성함이니 특별히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信徒揭要書)와, 성경 대·소요리문답은 성경을 밝히 해석한 책으로 인정한 것인즉 우리 교회와 신학교에서 마땅히 가르칠 것으로 알며 그 중에 성경 소요리문답은 더욱 우리 교회 문답책으로 채용하는 것이다’.
개혁주의를 따르는 전 세계 교회 교단은 대요리문답을 가장 정확한 교리적 서술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구성과 성경적인 내용 때문에 예배와 교육용으로 많이 사용한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