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잉구셰티아 자치공화국 수장인 마흐무드 알리 칼리마토프를 만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가 유럽에 천연가스 대금을 자국 루블화 대신 기존 유로화로 결제할 수 있다고 밝히며 ‘공급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로는 번지지 않았다. 다만 여전히 갈등의 불씨가 남은 만큼 유럽 각국은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의존을 줄이기 위한 대비 태세에 돌입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슈테펜 헤베슈트라이트 독일 정부 대변인은 30일(현지시간) 보도자료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올라프 숄츠 총리에게 유럽의 다음 달 결제는 유로화로 계속 이뤄질 것이고, 그동안 해왔던 대로 제재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가스프롬방크로 송금될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요청으로 이뤄진 통화에서 “다음 달 1일 이후 가스공급 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해야 한다는 법령을 공포할 것”이라면서도 “유럽 계약 상대방에게는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금으로 받은 유로화는 루블화로 환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숄츠 총리는 이날 통화에서 절차를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문서로 된 정보를 요청했다고 독일 정부 대변인은 설명했다. 앞서 러시아가 가스 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하라고 요구하자 주요 7개국(G7)은 기존 계약의 일방적이고 명백한 위반이라고 반발한 바 있다.
이는 원칙적으로는 가스 대금을 루블화로 지불해야 하지만 가스프롬방크를 통해 송금한다면 유로화도 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의 계열사 가스프롬방크는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사들이는 데 이용하는 주요 결제 창구인 탓에 서방의 전방위적인 금융 제재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유럽이 수입하는 전체 가스 중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한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 겸 경제장관은 “러시아가 가스 대금을 루블화로 지불하지 않으면 가스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위협을 철회하지 않았다”면서도 “즉각적이거나 신속하게는 아니지만 (위협 철회의) 첫 신호로 보인다”고 말했다. FT는 관계자를 인용해 “어느 쪽도 거래를 중단할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양쪽이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상황이 언제 급변할지 모르는 만큼 유럽 각국은 에너지 위기에 대비하고 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이날 러시아산 가스 공급 중단에 대비하는 조기경보를 발령했다. 하벡 장관은 독일의 가스 저장고의 잔량이 25%에 불과하다며 가스공급 감시 체제 강화를 위한 비상대책팀을 구성하고 기업과 가정에 에너지 절약을 촉구했다. 폴란드는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유럽연합(EU)에서 가장 먼저 러시아산 석유에 대한 금수 조치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독일·프랑스·벨기에·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가 카타르와 액화천연가스(LNG) 공급 계약과 관련한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