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전쟁이 장기전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고민이 점차 커지고 있다. 전쟁 초기부터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대규모 무기 지원에 나서왔지만, 이마저 한계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강국인 미국은 물론, 세계 무기시장에서 각광받는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이 자국산 무기가 없거나 지원 의사가 수그러들어서가 아니다. 우크라이나군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러시아제 혹은 러시아 체계에 의해 생산된 무기가 동날 상황에 처해서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1일(현지시간) “지금까지 나토 가입국인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 동구권 국가들이 보유한 러시아산 무기를 끌어모아 우크라이나군에 지원해줬던 미국과 나토가 딜레마에 빠졌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옛 소련에 속했고, 독립이전까지 러시아연방에 속했던 우크라이나는 군도 러시아산 무기 운용에 익숙한 상태다. AK47 돌격소총부터 T시리즈 탱크, 전투기와 폭격기 헬기 미사일 등까지 대부분 러시아산 무기를 써왔다. 따라서 서방에서 생산된 나토 표준체계 무기들이 지원될 경우 별도의 전문훈련이 필요하다. 미국이 수개월전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을 지원했을 때도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별도 훈련을 거쳐야 하는 바람에 막상 실전 배치에는 한달 이상의 시간이 더 걸렸다.
동구권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수많은 무기를 지원했지만, 우크라이나군은 끝도 없는 물량공세를 퍼붓는 러시아에 맞서기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재래식 러시아제 무기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미 폴란드와 체코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은 자국의 국방 공백이 생길 만큼 엄청난 양의 러시아제 무기를 우크라이나로 보냈다. 한마디로 더 이상은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무기가 없는 셈이다.
이에 미국은 러시아제 무기를 구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모양새다. 앤소니 블링큰 미국 국무장관은 이미 캄보디아와 콩고민주공화국 멕시코 콜롬비아 르완다 등지를 방문해 러시아제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댓가로 미국산 무기를 보내는 형태의 ‘무기 물물교환’ 협상을 벌여왔다.
신문은 “미국이 심지어 35년간이나 유지됐던 키프로스 미국산 무기 수출 금지조치도 풀었다”면서 “키프로스가 가진 러시아산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공여하는 댓가로 미국산 탱크 장갑차 곡사포 등을 대신 보내겠다는 협상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키프로스에 미국산 무기를 보낼 경우 오랜동안 이 섬의 영유권을 놓고 분쟁해왔던 그리스와 터키를 크게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문제가 다른 유럽지역의 복잡한 역학을 더욱 얽히게 만들 소지가 다분하다”고 분석했다.
NYT는 “우크라이나전쟁에서 반드시 러시아를 물리쳐야 한다는 대의에 미국과 나토가 모두 동의하고 있지만, 무기 지원 문제에 대해선 좀 더 여러 지정학적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고 전망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