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책임론을 반박했다. 미국과 유럽 일각에선 과거 친러시아적인 독일의 태도가 현재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몰고 왔다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메르켈 전 총리는 4일(현지시간) 대변인을 통해 성명을 내고 “2008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 결정을 고수한다”고 밝혔다. 당시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나토 회원국으로 승인하는 안을 추진했지만, 독일과 프랑스는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당시 독일 정상은 메르켈 전 총리였다.
우크라이나는 그 이후 나토에 가입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는 2019년 헌법에 나토 가입 추진을 명시할 만큼 서방 세계의 일원이 될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지정학적 위험 탓이다. 나토의 세력 확장을 우려해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침공을 단행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유럽연합(EU)의 맹주인 독일과 프랑스는 책임론에 시달렸다. 그중 에너지 수급을 위해 러시아와 밀착 외교를 펼쳐온 독일은 프랑스보다 상대적으로 강한 비판과 마주하고 있다. 비판의 방향은 2005년 1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집권한 메르켈 전 총리 쪽으로 돌아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3일 화상연설에서 “오늘은 나토 정상회의가 독일과 프랑스의 반대로 우크라이나가 퇴짜를 맞은 지 14년째 되는 날”이라며 메르켈 전 총리와 14년 전 프랑스 정상인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을 특별히 언급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두 사람을 우크라이나 부차로 초대해 러시아에 대한 양보가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AFP통신은 “메르켈 전 총리가 지난 16년간 자유 세계의 지도자로 칭송을 받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그의 업적에 결함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메르켈 전 총리는 이날 성명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잔혹한 행위를 지켜보고 있다. 러시아의 야만적 행위를 끝내기 위한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노력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