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 정보 당국 수장이 14일(현지시간) 튀르키예(터키)에서 만나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핵 위협과 러시아에 구금된 미국인 석방 문제를 논의했다고 BBC, CNN 등이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는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세르게이 나리시킨 러시아 대외정보국(SVR) 국장을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만나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를 사용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 대변인도 타스통신에 미·러 정보수장의 만남에 관해 “그런 협상이 있었다”면서 “미국 측 제안으로 이뤄졌다”고 말했으나 회동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양측은 러시아에서 마약 밀반입 혐의로 징역 9년형을 선고받은 미국 여자프로농구(WNBA) 선수 브리트니 그라이너와 간첩죄로 수감 중인 전 미국 해병대원 폴 웰런의 석방 문제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미국은 러시아 출신 무기 밀매상으로 미국이 구금 중인 빅토르 부트를 그라이너·웰런과 맞교환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번 만남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이뤄진 미국과 러시아 간 최고위급 회동이어서 전쟁 종식에 관한 얘기가 오갔는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NSC 관계자는 “번스 국장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을 논의하지 않았다”면서 “그는 러시아의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따를 후과와 전략적 안정성에 대한 위기 고조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만남에 대해 우크라이나 정부에 미리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최근 미국 정부가 평화적인 방식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CNN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최근 우크라이나 정부에 평화적인 방법으로 전쟁을 해결하는 것에 열린 입장을 취할 것을 권고했다고 보도했고, 설리번 보좌관이 푸틴 대통령의 최고위 측근들과 비밀 회담을 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지난주 올겨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협상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가 우크라이나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우크라이나는 ‘협상 불가론’을 외치며 러시아와의 종전 협상에 대해 선을 그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이날 유럽연합(EU) 외교위원회에서 “러시아는 군 재정비를 위해 휴전을 이용하려 한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완전히 철수해야만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