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포 둔대교회()가 시흥 옛 소래염전 소금창고, 근화창가 제1집 등과 함께 5일 경기도 등록문화재로 선정됐다.
군포 둔대교회는 일제강점기인 1936년 건립됐다. 53㎡ 규모의 한옥과 서양 건축 특성을 혼합한 절충형 근대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과 농촌 계몽운동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됐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군포 둔대교회는 118년 역사 계몽운동의 산실로 평가받는다.
1902년 군포 일대에서 가장 부자였던 박영식씨 집 사랑채에서 시작됐는데, 박씨는 당시 5살이었던 손자 용덕씨에게 신교육을 시키려고 배재학당 출신 황삼봉 선생을 독선생(가정교사)으로 초빙했다. 황 선생은 단순히 독선생으로 머물지 않고 계몽운동을 병행해 용덕씨뿐 아니라 주민들까지 모아 예배와 교육을 실시했다.
이를 본 박씨는 1903년 둔대동 354번지에 작은 토담(초가로 된 흙집)을 짓고 거기서 예배를 드리도록 했다. 이후 1910년 12월 박씨는 자신의 집 뒷산 기슭인 둔대동 434번지를 기증하고 1936년 예배당을 신축했다. 이 자리가 바로 현재 남아 있는 둔대교회 자리다. 기증한 땅의 토지대장 명단에는 13명이 공유한 것으로 돼 있다. 당시 목회자는 이동하면서 전도와 교육을 했기에 개인을 지정하지 않고 마을 신자와 토지를 공유하는 방법으로 기증한 것으로 추정된다.
둔대교회 교육 활동은 일제 강점기로 접어들면서 야학으로 정착됐다. 1935년 감리회보에 따르면 당시 야학 학생은 50명, 교사는 3명이었고 교장은 박인기 장로(박용덕씨의 동생)였다. 6·25전쟁 때는 인근 반월국민학교가 불타 소실되자 임시교사로 사용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