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파산사태 이후 미 의회에서 규제 도입 목소리가 구체화하고 있다. 가상화폐 시장에 대한 신뢰 하락,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현상으로 이번 침체가 예상보다 장기화할 수 있다는 경고도 계속되고 있다.
셰러드 브라운 미 상원 은행위원회 위원장은 18일(현지시간) NBC 방송에 나와 “연방기관이 가상화폐를 다뤄야 하고, 어쩌면 금지해야 할 수도 있다”며 “가상화폐는 (규제를 논의하기 위한) 테이블 위에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브라운 위원장은 다만 “가상화폐를 완전히 금지하면 해외로 유출되고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만큼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대신 재무부와 다른 관계 기관이 모여 가상화폐와 관련한 가능한 조치를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브라운 위원장은 “한국의 사이버 범죄자, 마약 밀매, 인신매매, 테러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금이 가상화폐로부터 나온다.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다”며 “우리는 당장 이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라운 위원장의 한국 언급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 운영 자금 마련을 위해 가상화폐 해킹에 나서고 있는 상황을 거론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미 민주당 소속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 의원과 공화당 소속 로저 마셜 상원의원은 가상화폐 업계의 돈세탁 방지 규정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표했다. 가상화폐 플랫폼이 은행이나 기타 금융기관과 마찬가지로 고객의 신원 확인을 강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워런 의원은 “가상화폐는 테러리스트, 랜섬웨어 범죄집단, 마약 밀매자와 돈을 합법화하려는 불량 국가가 선택하는 도구가 됐다”며 “가상화폐는 세계에서 부패에 가장 취약한 것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키어스틴 질리브랜드, 공화당 신시아 루미스 상원의원도 내년 새 의회가 시작되면 가상화폐 회사의 소비자 보호 조치를 강화하는 내용의 금융 혁신법을 재발의 하기로 했다. 질리브랜드 의원은 FTX로부터 1만800달러의 후원을 받았던 가상화폐 우호론자였다. FTX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가 고객 돈을 유용해 막대한 정치자금을 뿌리며 규제 완화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관련 정치인들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외신은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FTX의 붕괴와 뱅크먼-프리드의 체포로 가상화폐 거품이 확실히 터졌다는 느낌이 깊어졌다”며 “그동안 규제에 이의를 제기해 온 정부도 갑자기 돌변해 더 많은 감독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도 가상화폐 시장에 악재가 되고 있다. 데이비드 케머러 코인레저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진행 중인 크립토윈터(가상화폐 겨울)가 이번에는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다”며 “40년 만의 최악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 등 거시 경제적 요인 때문”이라고 말했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전 세계 가상화폐 총 가치는 8500억 달러로 1년 전(3조 달러)의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하루 가상화폐 거래 규모도 지난 5월 1310억 달러에서 570억 달러로 줄었다.
WP는 “업계는 지금 이 순간을 ‘크립토윈터(가상화폐의 겨울)’이라고 부르고 있다”며 “전문가들은 침체의 기세와 규모가 빙하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