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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범죄 무처벌·고질적 권위주의… 러軍 ‘잔혹행위’ 부추겼다


우크라이나로 이주한 체첸 여성 아세트 차드씨는 얼마전 부차에서 벌어진 일을 담은 사진 한 장을 보며 치를 떨었다. 사망한 세 명의 민간인 남성 시신 앞에서 울부짖는 중년 여성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차드씨는 곧바로 22년전 체첸 수도 그로즈니에서 자신이 당했던 일을 떠올렸다. 옆집 마당에서 수십발의 총격을 받고 살해당한 일가족 4명의 시신이 방치됐던 장면이었다. 두 사건 모두 러시아군에 의해 저질러진 전쟁 범죄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17일(현지시간) “제2차 세계대전 이래 러시아군은 각종 전쟁에서 민간인 살해, 성폭행, 고문, 무차별 폭격 등 각종 잔혹 행위를 반복해왔다”면서 “이 같은 전쟁 범죄는 러시아군의 전통과도 같았으며, 고질적인 군 내부시스템에 의해 고착화됐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군은 병사나 장교가 적지에서 저지른 어떠한 전쟁 범죄 행위에 대해서도 처벌하지 않는다. 전투원의 행위가 전쟁 범죄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는 부대 참모 조직도 없으며, 모든 건 정치 장교가 결정한다. 정치 장교는 군대가 아닌 크레믈린이 파견한 친 푸틴 인사들로, 전쟁 범죄 당사자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사건 은폐 방법을 찾는 것에만 골몰한다.

군 내부에 만연한 권위주의도 잔혹행위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현장 전투원이 공격 목표가 민간인 거주구역이거나 민간인이란 사실을 보고해도 상부 지휘관은 무조건 명령 이행만 강요한다. 만약 현장 전투원들이 이를 따르지 않으면 명령 불복종으로 가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얼마 전 우크라이나군이 도청한 러시아군 지휘관과 전투 현장 병사와의 통신 내용은 충격적이다. 병사가 “공격 타깃이 민간인입니다”라고 하자 상관은 “잔말 말고 무조건 전부 다 죽여라”는 명령만 수차례 반복했다.

러시아군 체계에는 대민 작전 개념도 없다. 점령한 적지의 민간인을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기 위한 인도주의적 구호에 아예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군은 전쟁 과정에서 수도 없이 잔혹 행위를 반복한다. 그 시작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옛 소련군의 독일 진격이었다. 폴란드부터 독일 동부 지역을 장악할 때까지 소련군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다 죽인다”는 악명을 떨쳤다. 독일군 병사들은 소련군이 다가온다는 소식을 접하면 무조건 도망가 반대편의 미군에 투항했다고 한다. 잡히면 전쟁포로가 아니라 즉결처형됐기 때문이다.

1994·99년 두 차례 벌어진 체첸전쟁도 대표적 사례다. 독립을 주장하며 봉기한 체첸 반군을 소탕하기 위해 러시아군은 수도 그로즈니를 초토화 했다. 건물 전부를 파괴했고 수만명의 체첸인을 고문·성폭행·살해했다.

현재 진행 중인 시리아 내전도 마찬가지다. 반군의 거점 알레포는 러시아군이 참전하면서 민간인 대량학살장으로 변모했다. 반군 1명을 잡겠다고 시민 100명을 살해했다는 악명이 날 정도였다.

요즘 한창 온라인에서 러시아인들에게 인기를 끄는 동영상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선 알렉세이 샤불린 대령의 맹세다. 러시아 국방부가 제작한 이 영상에서 샤블린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이룰 것이다. 우리의 위대한 전통을 위해 끝까지 목표를 이루겠다”고 말한다.

NYT는 “이 선전 영상이 어디에서 러시아군의 잔혹 행위 악습이 기원하는지를 잘 보여준다”면서 “전쟁에는 인권도 생명 존중도 다 사치라는 사고방식을 러시아군 전체가 공유하는 듯하다”고 평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