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양대 시절 무명이었던 박찬호 투수가 LA 다저스에 데뷔한지 꼭 30년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선수를 보기 어렵게 됐네요?
*여러가지로 야구 환경은 좋아졌지만 오히려 코리안 메이저리거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류현진, 김하성, 최지만, 배지환이 빅리그에서 뛰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부터 많은 변화가 벌어졌습니다. 캐나다 토론토에 있던 류현진 투수가 KBO한화로 복귀했고 뉴욕 메츠의 내야수 최지만은 마이너리그로 강등됐습니다.
기대했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이정후는 한달반만에 무리한 허슬 플레이로 어깨 수술을 받으며 시즌아웃됐고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우여곡절 끝에 복귀했지만 또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랐습니다.
이밖에 이정후의 매부이자 이종범의 사위인 샌디에고 파드레스 마무리투수 고우석은 시범경기에서의 부진으로 메이저리그 데뷔도 치르지 못한채 마이너리그를 전전하고 있습니다.
2. 그럼 오늘날짜 기준으로 빅리그에서 뛰고 있는 한국선수는 누구 누구인가요?
*누구누구 복수로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달랑 샌디에고의 김하성 선수 한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경우 다저스의 오타니, 선발투수 요시노부 야마모토는 물론이고 시카고 컵스의 쇼타 이마나가, 유세이 키쿠치, 마사타카 요시다, 켄타 마에다, 코다이 센가, 신타로 후지나미, 세이야 스즈키 등 주전선수 명단도 모두 외우기 힘들정도로 많습니다.
3. 한국선수가 사라진 원인은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과거에도 타자보다는 투수 부문이 경쟁력이 있었는데 2000년대까지는 KBO 출신 한국 선수들이 상당히 매력이 있었습니다. 특히 투수 같은 경우에는 90마일 이상 뿌리면 어느정도 빅리그에서도 통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체격과 파워, 타격기술이 향상되면서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회전력과 공끝이 좋은 90마일 후반대가 아니면 명함도 내밀수 없게 됐습니다.
한국최고의 마무리 투수였던 고우석의 케이스도 그래서 충격적입니다. 고우석은 KBO를 대표했던 광속구 투수였지만 마이너리그 트리플A탈삼진 비율이 고작 8.3%로 충격을 던졌습니다.
고우석의 빅리그 선배 윤석민 투수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대표팀에 금메달을 안겨주었던 정통파였지만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한경기에서 던져보지 못한채 프로골퍼로 변신했습니다.
4. 그러면 앞으로의 전망은 어떻습니까?
*솔직히 이젠 KBO에서 고우석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가 나타나지 않으면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시속 100마일 가까운 직구를 던지는 투수는 이제 마이너리그에도 널려있기 때문에 굳이 돈 많이 들여 불확실한 한국 투수들을 영입하지 않는 분위기가 됐습니다.
현재 KBO 투수 가운데 미국에서 통할 수 있는 선수는 사실상 없는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구단은 KBO보다 일본프로야구(NPB) 투수들을 더 선호합니다. 구속도 빠르고 변화구 각도도 메이저리그 투수들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타자 역시 강정호 이후 더 이상의 슬러거가 나오지 않고 있는데 앞으로도 한국인 타자가 빅리그에 영입되는 일은 극히 드물 것으로 보입니다. 반짝 한두시즌 잘하는 타자들은 있지만 이치로 스즈키, 히데키 마쯔이, 쇼헤이 오타니 등 일본처럼 10년 가까이 꾸준함을 보이는 타자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지금 키움 히어로즈의 김혜성이 전례없는 홍보전을 펼치며 빅리그 구단들에 어필하고 있지만 그 정도 야수는 마이너리그에도 많습니다. 30년전 박찬호를 능가하는 투수도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 한국의 실정입니다.
5. 계속해서 야구 소식 이어집니다.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전통적인 타선 구성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는 추세라죠?
*네, 과거에는 제일 강한 타자를 4번에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1번타자 자리에는 출루율이 높고, 공을 많이 보는 선수를 놓았죠. 경기 초반 상대 선발 투수의 구위를 확인하려면 가능한 한 1번 타자가 공을 많이 던지게 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장타보다는 볼넷을 골라서라도 출루를 많이 하는 타자가 1번에 어울렸지요. 2번 타순에는 작전 수행 능력이 좋은 타자를 썼습니다.
그런뒤에 3번과 4번에 장타력이 있는 타자를 배치해서 1번 타자가 출루하고, 2번 타자가 진루시키고, 3~4번 타자가 타점을 올리는 게 이상적이라고 옛날에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야구는 이런 인식이 완전히 뒤바뀐 것입니다.
6. 구체적으로 현대 야구에서 타순이 어떻게 변화한 것인가요?
*지난해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의 타순별 OPS(출루율+장타율) 기록은 기존 상식을 완전히 뛰어넘어섰습니다. 1번 타순 OPS가 8할대로 가장 높았습니다. 4번 타순은 0.789로 2위에 그쳤습니다. 또 3번 타순이 0.778, 2번 타순이 0.769로 뒤를 이었습니다. 과거 ‘클린업 트리오’였던 5번 타자 OPS는 0.751로 2번 타자보다도 낮습니다. 요즘 야구는 제일 센 타자를 1번에 놓는다.
7. 듣고보니 상당히 파격적인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축구, 농구, 배구 등 다른 구기종목은 수퍼스타 한사람의 공격 점유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야구는 특정 선수에게 공격 기회를 몰아줄 수 없습니다. 타순이 정해져 있어 순서대로 타석에 들어서야 하는데 득점 기회가 왔다고 해서 조금 전 아웃된 4번 타자를 다시 타석에 세울 수 없습니다. 1번 타자가 가장 많이 타석에 들어서죠.
빅리그 통계에 따르면 1번과 9번 타자 타석 수는 20% 차이가 납니다. 잘 치는 선수가 한 번이라도 더 많이 공격하는 게 팀에 유리하기 때문에 1~2번이 3~4번보다 더 잘 치는 게 팀 공격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LA 다저스가 무키 베츠를 1번, 오타니를 2번 타자로 내세우고 뉴욕 양키스 역시 홈런왕 출신 에런 저지가 1번 또는 2번에 섭니다. 과거 같으면 당연히 3번 또는 4번으로 나서야 마땅한 타자들이죠.
8. 그렇다면 한국 야구계 흐름은 어떻습니까?
*한국도 이 추세를 따라가는 중입니다. 특히 본인 자신이 평생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국가대표 4번타자로 군림했던 이승엽 감독조차 두산 베어스 1-2번 타자에 강타자 로하스, 라모스 등 제일 잘 치는 외인 타자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제는 과거처럼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감독의 야구’가 아니라 ‘선수의 야구’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