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폭동 당시 폭도들의 방화로 보관중인 원단과 완제품, 재봉틀 등이 완전히 잿더미로 변한 액티브 USA 모습(위쪽)과 30년이 지난 오늘의 대형 쇼룸 건물. 이 건물은 지난 2017년 LA 비즈니스 저널이 수여한 ‘최고 상업용 부동산 건물’로 선정돼 리모델링 부분 금상을 수상했다.그는 지금도 빨간 벽돌로 지어진 건물 앞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 와 깊은 침을 한번 삼킨다. 이민 온지 5년 만에 천신만고 끝에 100만 달러를 주고 구입한 빨간 벽돌의 공장 건물, 부부가 밤을 새어가며 애지중지 단장했던 건물이 7개월 만에 앙상한 철골 뼈대만 남긴 채 폐허로 변한 모습은 지금도 마음이 해이해 질 때면 스스로 다잡는 장면들이다.그는 다시 일어섰고 30년이 지난 오늘 패션디스트릭 자바의 대형 의류업체의 CEO로, 한인 은행의 대주주로, 그리고 모교인 영남대학교에 400만 달러의 장학금을 기부하는 자선사업가로 성공했다. 28일자로 4.29 폭동으로 완전 폐허가 된지 딱 30년이 되는 액티브 USA 이 돈(영어명 단 이·Don Rhee) 회장의 스토리다.그의‘4.29 폭동과 그 후 30년’ 스토리는 기적을 넘어 아직 엮어지지 않은 한 편의 미완의 드라마이다.그는 기자의 수차례에 걸친 인터뷰 요청에 4.29 폭동으로 아직도 어려움에 처해있을지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혹시 누를 끼칠지도 모른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했다. 그러나“역사는 되풀이 된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똑같은 불행을 겪는다. 그 때의 아픔, 도전과 교훈을 후세대에 전하고 나누는 것은 아픈 역사든 기쁜 역사든 역사를 몸으로 체험했던 1세들이 후세대들에게 전해야 하는 의무다”라는 기자의 말에 사양을 거두고 어렵사리 인터뷰에 응했다.“당시의 처참했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폭도들이 북상중이라는 소식과 함께 경찰로부터 철시하라는 통보를 받고 문단속을 하고 노스리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샌호세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TV에 보니 액티브 건물이 불타고 있다고 …”그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무작정 발길을 돌려 공장으로 향했으나 101 프리웨이 출구가 완전히 막혔습니다. 한인타운에 거주하는 직원에게 전화했더니 직원역시 접근이 안된다며 울면서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폭동이 진정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4일 만에 찾은 공장건물은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다. 1만5천 스퀘어피트 공장에 수십대의 재봉털과 빼곡이 차 있었던 원단과 옷 들이 한 줌으로 재로 남아있었다. 피해액수는 200만 달러에 달했다. 나중에 알람업체를 통해 안 일이지만 물건을 약탈하러 들어온 폭도들이 CCTV가 있으니 불을 지르자며 화염병을 던지는 모습이 고스란히 녹화돼 있었다.물건도 물건이었지만 부부가 밤잠 안자고 일해 내 건물을 마련했다는 뿌듯함으로 지낸 7개월, 그 안타까운 심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 때의 심정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 못할 겁니다”이 같은 충격으로 당시 4.29 폭동으로 피해를 입은 많은 사람들이 LA에 환멸을 느끼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거나 사업을 접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한국으로 귀국길에 오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