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 의문사’에서 시작된 이란 반정부 시위가 16일로 한 달을 맞는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처음에는 20대 여성들이 히잡을 불태우고 머리카락을 자르며 항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지만 이제는 성별·나이·직업에 상관없이 다수가 “여성, 생명, 자유”와 “독재자에게 죽음을”을 외친다. 이란 주변 나라들은 물론이고 미국·캐나다·프랑스 등 전 세계 많은 이들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미국은 히잡 의문사에 연관된 이란의 도덕 경찰들에게 제재를 가했고, 프랑스·캐나다·독일 등도 이란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시위가 거세지는 만큼 이란 당국의 탄압도 심해지고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인권(IHR)은 지난 12일 현재까지 미성년자 23명을 포함해 최소 201명이 숨졌으며 수천 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호세인 살라미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조만간 반정부 시위의 배후 세력을 공격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이란 교육부 장관은 시위에 참여한 일부 학생을 정신병동과 비슷한 ‘심리 기관’에 가뒀다고 인정했다. 이란 당국은 인터넷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시위를 선동한 책임이 있다며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의 모기업인 메타(META)에 법적 조치를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란 서부 쿠르디스탄에서 살던 마흐사 아미니(22)는 지난달 13일 가족과 함께 수도 테헤란을 여행 중이었다. 이날 아미니는 히잡으로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가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테헤란의 한 지하철역 밖에서 도덕 경찰에게 체포됐다. 그리고 3일 후인 16일 혼수상태에 빠진 후 숨졌다. 경찰은 사인이 심장마비라고 밝혔으나 아미니 가족은 고문으로 인한 죽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도대체 이란에서 ‘히잡’이 뭐길래 아미니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걸까. 시위의 의미를 알기 위해선 히잡의 의미부터 알아야 한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에서 만 9세 이상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의무적으로 히잡을 착용해야 한다. 이를 감시하고 단속하는 ‘도덕 경찰’도 존재한다. 나르게스 바조글리 존스홉킨스대 중동학과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히잡의 강제적인 착용은 이란의 핵심 정체성의 일부”라고 말한다. 히잡을 쓴 여성의 모습은 이란 정부의 사회 전반에 대한 통제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1930년대만 해도 이란에서 히잡 착용은 강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은 금지됐다. 이란의 서구화를 위한 시도였다. 모나 타잘리 미국 아그네스 스콧 대학 국제관계학 교수는 NYT에 “(당시)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썼을 경우 강제로 이를 벗길 수 있었다”며 “사실상 보수적인 가정에서 사는 여성을 집에 가두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몇 년 후 이란에서 히잡 착용 금지법은 자취를 감췄다.
1970년대의 ‘히잡 착용 의무화’는 역설적으로 이란 여성들의 힘을 키우는 계기가 된다. 머리와 상반신을 가리도록 하는 ‘히잡’을 씌움으로써 자신의 딸들이 안전하다고 느낀 아버지들이 자식을 대학에 보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란에서 대학 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실제로 아미니 사망 후 벌어진 초반 시위들은 20대 여성이 많은 테헤란의 여러 대학에서 발생했다. NYT는 “여성이 강제로 착용하는 히잡은 오랫동안 국가 권력의 상징이었다. 이제 여성이 주도하는 시위는 이란의 미래에 대한 상반된 비전의 상징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란에서 시위가 격화되는 이유는 히잡 착용에 대한 반발이 전부가 아니다. 물가 상승 등 경제난과 빈부격차 심화, 지지부진한 개혁·개방 등이 젊은 세대 분노의 근원이다. 이슬람혁명 후 이란 최고지도자가 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통치로 이란은 반미(反美) 국가로 돌아섰다. 이후 미국의 제재가 시작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커졌다.
이란의 지난 8월 물가상승률은 52.2%다. 닭고기 값은 10년 전보다 20배 비싸졌고 식용유 가격은 40배 올랐다. 지난 5년 동안 이란 통화 리알의 가치는 약 90% 하락했다. 그 결과 빈곤층의 비율은 2015년 20%에서 30%대로 증가했으며 한때 60%였던 중산층 비율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설상가상으로 2021년 당선된 강경 보수파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이란핵합의(JCPOA) 복원에도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개혁·개방에 대한 젊은 층의 희망을 꺾었다.
국제위기그룹 이란 책임자 알리 바즈는 NYT에 “이란의 젊은 세대가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는 잃을 것이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 또한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사람들이 (국가) 시스템의 개혁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믿게 되는 상황을 만든 건 이란의 지도부”라고 지적했다.
이란 중북부 지방인 마잔다란 출신의 언론 활동가이자 시위자 세이드 알리 하사니(35)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사람들이 히잡 착용법 폐지를 요구하기 위해 시위를 하고 있다는 정부의 생각은 완전히 잘못됐다”며 “사람들은 차별과 부당함, 가난에 질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이란의 반정부 시위는 실패로 끝났다. 2000년 이후 이란에서는 세 번의 시위가 있었다. 2009년 대통령 부정선거 항의 시위와 2017년 경제정책 실패 항의 시위, 2019년 휘발유 가격 폭등 항의 시위다. 그러나 모두 이란 보안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되며 성공하지 못했다.
이번 시위가 과거와 다른 건 상당수 시위 가담자들이 히잡 착용법 폐지 등 현안을 넘어 이슬람 공화국의 종식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광범위한 사회적 지지를 받고 있어 유의미한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에는 이란의 필수 산업인 에너지업계 종사자들도 파업을 선언하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이란 축구국가대표팀 선수들은 오스트리아 마리아엔처스도르프에서 열린 세네갈과의 평가전에서 유니폼 위에 검은색 재킷을 입어 국기를 가렸다. 시위를 지지한다는 뜻을 보여준 것이다.
사남 바킬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중동·북아프리카 프로그램 부소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축구팀의 지지가 ‘이번 시위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라고 말한다. 바킬 부소장은 “현재 이란의 시위는 유명 이란 영화배우부터 시작해 스포츠 업계와 인플루언서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들의 지지는 이란 국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며 “2019년도 시위처럼 (이란 정부가) 가혹한 방식으로 시위대를 억압하는 것을 조금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시위가 계속되면 사업가들이 흔들리기 시작할 것이고 만약 군대에 균열이 생기면 반란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비영리단체 ‘카네기유럽’은 “현재의 시위가 이슬람 공화국 종말의 시작이 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독재자에게 죽음을’을 넘어서는 정치적 의제와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조직적인 운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