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주택가에서 고문 흔적이 있는 12세 소녀의 시신이 여행가방에서 발견돼 프랑스가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용의자가 불법체류자로 밝혀지며 이주민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 당국은 지난 14일 파리 19구의 한 아파트 단지의 뜰에서 수습된 12세 소녀 ‘롤라’를 살해한 혐의로 24세의 알제리 여성을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BBC 등 영국 언론이 지난 18일(현지시각) 밝혔다.
이 여성은 당일 오후 시신이 든 여행가방이 발견된 아파트의 입구에서 롤라와 함께 있는 장면이 CCTV에 찍혔다. 몇 시간 뒤 이 여행가방을 비롯해 무거운 짐을 나르는 모습이 또다시 CCTV에 포착돼 용의자로 특정됐다.
이 여성은 살인, 성폭행, 고문 등의 혐의로 파리 남부 교도소에 구금됐다. 시신을 옮기는 과정에서 도움을 준 40대 남성도 함께 체포됐다.
조사당국은 롤라의 사인이 목 졸림 등에 따른 질식사로, 부검 결과 소녀의 얼굴과 등, 목 등 신체 곳곳에 고문 흔적으로 보이는 상처가 나 있었다고 밝혔다.
끔찍한 사건에 분노한 파리 시민들은 사건 현장에 꽃과 양초를 놓으며 숨진 소녀를 추모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엘리제궁으로 소녀의 부모를 불러 위로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다흐비아 B’로 알려진 용의자가 추방 명령을 받은 불법 체류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프랑스 정치권에서는 이민 정책에 대한 공방에 불이 붙었다.
6년 전 학생 신분으로 프랑스에 입국한 용의자는 체류증이 만료된 것이 적발돼 지난 8월 프랑스의 한 공항에서 출국이 제지된 뒤 1개월 내 프랑스를 떠나라는 ‘OQTF’ 명령을 받은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체류증 만료자에 대해 보다 높은 제제도 가능하지만, 그는 전과가 없어 ‘OQTF’ 명령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명령은 10건 중 1건만 지켜지고 있는 형편이라고 BBC는 지적했다.
극우, 우파 진영 정치인들은 이번 사건이 정부의 느슨한 이민 정책과 치안력 부재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총공세를 가하고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 극우 인사인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대표는 “이런 야만적인 짓을 한 용의자를 프랑스에 둬서는 안 됐다. 너무나 많은 범죄가 불법 이주민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며 “통제받지 않고, 은밀히 이뤄지는 이주를 왜 중단시키지 못하고 있느냐”고 성토했다.
지난 대선에 후보로 나섰던 극우 인사 에리크 제무르도 이번 사건을 ‘프랑스인 살해’로 규정하며 정부가 소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장관은 반이민 정서를 선동하려는 극우 인사들의 언행을 경계하면서, 유족을 존중하고 말을 가려서 하라고 맞받았다.
한편 숨진 소녀의 발에는 0과 1이라는 의문의 숫자가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용의자의 살해 동기를 둘러싼 소문도 현지에서 무성하다고 BBC는 전했다.
당국은 용의자가 숨진 소녀의 어머니와 과거에 아파트 출입을 둘러싸고 언쟁을 벌인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됐을 가능성도 살피고 있다고 한 소식통은 말했다.
용의자가 수년 전 가정폭력에 노출됐다는 보도도 나오는 가운데, 용의자에 대한 심리 검사도 예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은초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