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북한의 민주주의 성숙도가 전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는 영국 조사기관의 평가가 나왔다. 북한보다 민주주의 수준이 낮은 것으로 평가된 나라는 미얀마, 아프가니스탄뿐이다. 이 조사에서 한국은 전년보다 8계단 하락한 24위를 기록했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1일(현지시간)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2’(Democracy Incex 2022)에서 북한은 올해 10점 만점에 1.08점을 받아 167개국 중 165위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와 같은 점수와 순위다.
EIU는 2006년부터 167개 국가를 대상으로 다원주의, 정부 기능, 정치 참여, 정치 문화, 시민 자유 5개 영역을 평가해 민주주의 발전 수준 점수를 산출해왔다.
이를 토대로 8점이 넘는 국가는 ‘완전한 민주국가’로 분류된다. 6점 초과∼8점 이하는 ‘결함 있는 민주국가’, 4점 초과∼6점 이하는 ‘민주·권위주의 혼합형 체제’, 4점 미만은 ‘권위주의 체제’ 4단계로 구분한다.
북한은 세부 평가에서 ‘선거 과정과 다원주의’ 항목과 ‘국민 자유’ 부문에서 0점을 받았다. 이와 관련한 민주주의 체계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이 외에 ‘정부 기능’ 2.5점, ‘정치 참여’ 1.67점, ‘정치 문화’ 1.25점을 받으며 대부분 항목에서 매우 저조한 수준을 기록했다.
북한은 EIU가 처음 점수를 산출한 2006년부터 2021년까지 16년 연속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최악의 민주주의 수준을 가진 나라로 평가됐다. 북한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국가는 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의 폭정이 이어지고 있는 미얀마(0.74점),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집권 중인 아프가니스탄(0.32) 2개국에 불과하다.
한국은 10점 만점에 8.03점을 기록, 8점대에 턱걸이하며 3년째 ‘완전한 민주국가’ 평가를 지켜냈다. 항목별로는 ‘선거 과정과 다원주의’ 9.58점, ‘정부 기능’ 8.57점, ‘정치 참여’ 7.22점, ‘정치 문화’ 6.25점, ‘국민 자유’ 8.53점을 획득했다.
상위권에는 북유럽 국가가 다수 포진했다. 노르웨이(9.81점)가 1위를 지켰으며 뉴질랜드(9.61점), 아이슬란드(9.52점), 스웨덴(9.39점), 핀란드(9.29점), 덴마크(9.28점), 스위스(9.14점), 아일랜드(9.13점), 네덜란드(9.00점) 등이 뒤를 이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대만(8.99점)이 9위를 기록하며 유일하게 10위 안에 들었다. 일본(8.33점)은 지난해보다 1계단 높은 16위에 오르며 한국을 앞질렀다.
미국(7.85점)은 지난해보다 4계단 내려간 30위였다. 미국은 2006∼2015년 ‘완전한 민주국가’ 명단에 있었지만 버락 오바마 전 정부 말기인 2016년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4년 임기 내내 ‘결함 있는 민주국가’로 분류되며 순위가 하락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평가는 내림세를 걷고 있다.
중국(1.94점)은 8계단 추락하며 타지키스탄과 공동 156위에 머물렀다. 해당 조사에서 첫 1점대 기록이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봉쇄 조치에 반발해 지난해 11월 터진 ‘백지 시위’ 사태가 평가에 반영됐다.
이 외에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5.42점)는 87위, 러시아(2.28)는 146위로 집계됐다. EIU는 이번 보고서 제목을 ‘전선의 민주주의와 우크라이나를 위한 전투’로 작명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언론을 장악하고 반전 시위대를 탄압하고 있다”며 “제국주의 강대국 지위를 되찾으려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야욕이 서방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고 적었다.
지난해 조사대상국 전체 평균 점수는 5.29점을 기록했다. 역대 최저치로 떨어진 전년(5.28점) 수준에 머물렀다. EIU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각국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 여파가 여전한 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민주주의 체제 아래 사는 세계 인구 비율은 45.3%, 36.9%는 권위주의 통치 아래에 놓인 것으로 조사됐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