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유럽연합(EU)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2년 넘게 갈등을 빚어온 북아일랜드의 지위와 관련해 새로운 협약에 합의했다.
BBC 등에 따르면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2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외곽 윈저에서 회담한 뒤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북아일랜드 관련 브렉시트 협약을 수정한 ‘윈저 프레임워크’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2019년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가 체결한 브렉시트 협정의 일환으로 2021년 발효된 ‘북아일랜드 협약’을 수정한 것이다.
수낵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결정적인 돌파구를 만들었다”면서 “영국과 EU는 동맹국이고 무역 파트너이자 친구이며, 우리 관계의 ‘새로운 장’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수낵 총리는 합의안을 의회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새 협약은 영국 내 북아일랜드의 지위를 보호하고 북아일랜드에 대한 EU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우선 영국 내 교역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영국 본토에서 북아일랜드로 넘어가는 물품을 북아일랜드행(녹색 선)과 EU행(적색 선)으로 구분하고 녹색 선 물품은 검역하지 않는다. 또 북아일랜드에서 파는 주류 등에 지금까지 적용된 EU의 부가가치세(VAT) 규정 대신 영국의 VAT 규정이 적용된다. 북아일랜드에 적용되는 EU법에 대해서도 북아일랜드 의회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된다.
영국과 EU는 북아일랜드 협약을 두고 2년 넘게 갈등을 겪었다. 영국은 브렉시트 당시 북아일랜드를 EU 단일시장에 속하는 것으로 남겨두고, 영국 본토에서 북아일랜드로 넘어가는 물품은 모두 검역·통관을 거치도록 했다. 그러나 통관 절차로 인해 물품 공급에 차질이 생기자 영국은 협약 개정을 EU에 요구해 왔다.
이번 협정을 계기로 영국 내 교역이 원활해지는 경제적 효과뿐 아니라 영국과 EU 간 관계가 진전되는 정치적 효과도 발생할 것이라고 외신들은 예상했다. 이번 협약의 일환으로 EU는 영국 과학자들이 950억 유로 규모의 ‘호라이즌 유럽’(연구기금 지원 프로그램) 프로젝트에 합류하는 절차를 시작할 방침이다. 영국 과학자들은 2년 넘게 이 지원에서 배제됐다. 영국과 프랑스가 향후 난민들이 소형 보트로 도버해협을 횡단해 밀입항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수낵 총리 본인으로선 땅에 떨어진 보수당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다음 총선을 준비할 동력을 얻게 됐다.
다만 북아일랜드의 연방주의 정당인 민주연합당(DUP)이 이번 협약에 동의해야 한다는 점이 관건이다. DUP는 그동안 북아일랜드 협약을 거부하면서 연정 내각을 구성하는 것을 거부해 왔다. DUP는 성명에서 “북아일랜드 경제의 일부 분야에 여전히 EU법이 적용된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밝혔다. 이어 협약을 검토하고 필요에 따라 수정을 모색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