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am News

역대 두번째 규모 붕괴… 예금보호 안되는 200조원 시한폭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은 고객 예금 대부분을 수익률이 큰 장기채권 투자에 ‘올인’했다가 발생했다. 순식간에 발생한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사태)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이 은행은 미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기술벤처 스타트업 등을 고객으로 모아 1년 만에 자산이 두 배 가까이 증가할 만큼 초고속 성장했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지난해 말 총자산은 2090억 달러(약 276조원)로 2021년 말 1160억 달러의 2배 정도 증가했다.

몰락의 원인은 의외로 단순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쇄 금리 인상이 이어지자 돈줄이 마른 SVB의 주고객(스타트업)들이 앞다퉈 맡겼던 예금을 인출했다. SVB의 현금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고, 반대로 초저금리 시대 낮은 이자로 샀던 장기채권의 금리는 크게 올랐다. SVB는 보유 채권을 헐값에 팔 수밖에 없었다. 지난 8일(현지시간) 예금 지급을 위해 미국 국채로 구성된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매도 의도로 매수한 채권과 주식) 상당량을 매각, 18억 달러나 손해를 봤다.

이에 SVB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22억5000만 달러어치의 신주 발행 발표를 했는데 이것이 치명타였다. 불안감에 휩싸인 고객들이 뱅크런에 나서자 미 금융 당국은 이 발표 44시간 만인 지난 10일 파산 절차에 돌입했다.

문제는 SVB의 예금 86%가량인 1515억 달러(약 200조4000억원)가 FDIC 보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금을 되돌려 받지 못하는 기술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은 줄도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 당국과 전문가들은 불안 심리 확산으로 SVB와 유사한 은행에서도 뱅크런이 도미노처럼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WSJ에 따르면 다른 주요 지역은행인 퍼스트리퍼블릭뱅크도 보증되지 않은 예금 약 1200억 달러를 갖고 있다. 시그니처뱅크도 약 800억 달러 무보증 예금이 있다.

파산 여파는 다른 나라로도 번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영국 SVB도 파산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며 “거래를 중단하고 신규 거래를 받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러미 헌트 영국 재무장관은 12일 성명을 내고 “영국의 가장 유망한 기업들에 미칠 피해를 피하거나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영국은 13일 SVB와 거래하는 기업의 유동성 지원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도 SVB 캐나다 지점 대출 규모가 4억3500만 캐나다달러로 전년(2억1200만 달러)보다 2배 늘어난 상태여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미 FDIC는 신규법인을 세워 SVB의 기존 예금을 모두 이전하고 SVB 보유 자산 매각을 추진하기로 했다. 당국은 예금보호 한도 초과분의 일부를 조기에 지급하고 뱅크런 확산에 대비해 기금을 마련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대책을 논의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이날 CBS 방송에 출연해 “미국 은행 시스템은 자본이 풍부하며 회복력이 있다”면서 연방정부의 구제금융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우리나라 국민연금이 SVB가 속한 SVB금융그룹의 주식을 지난해 말 기준 10만795주 보유하고 있었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지난해 말 기준 2300만 달러(약 304억원)의 가치가 있었지만 지난 9일 현재 주가는 반 토막 난 상태다.

신창호 선임기자,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procol@kmib.co.kr